박선희 청주시 흥덕구 민원지적과 지적팀장

겨울은 우리 가족에게 불안한 계절이다. 유독 겨울만 되면 약해지시는 친정아버지의 컨디션을 매일같이 체크하고 건강이 악화하지 않을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올겨울도 무난히 지나가시지 않는 듯하다. 몇 년 전 당뇨 합병증으로 발등이 괴사해 피부 이식과 몇 차례 수술하며 오래 병원에 입원해 계신 적이 있었는데 수술 후 섬망 증상이 심해 가족들이 무척 놀랐다. 처음 대하는 아버지의 낯선 행동이 당황스럽고 때론 무섭기까지 했던 섬망 증상. 아버지나 우리 가족에게는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 후 건강을 회복하시고 주간보호센터에 계시는 아버지께서는 나름대로 센터의 '분위기 메이커'로 지내고 계셨는데 차츰 치매 증상을 보이시며 최근 들어 활동을 제대로 못 하시는 상태가 되셨다. 하나, 둘 늘어나는 치매 증상을 보며 가족들의 근심도 하나, 둘 쌓여가고 있다. 이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함에도 이런 일은 쉽게 적응이 힘들다.

같은 빌라 위아래 층에 친정 가족들이 모여 살아서 매일은 아니지만 자주 뵈러 가는 편이다. 얼마 전 퇴근 후 친정 부모님께 들렀는데 그날따라 아버지께서 내 손을 꼭 붙잡고 놓지 않으셨다. 그날 오후 장기요양등급 판정을 위해 검사를 받으셨다는 이야기를 친정엄마께 전해 들었다. 검사를 받는 동안 친정엄마께서도 함께 계셨는데 검사하시는 선생님께서 엄마를 가리키며 "부인 이름이 뭐예요?"하고 아버지께 물으셨다고 한다. 그런데 뜻밖에도 아버지께서 "몰라요"라고 대답을 하셨다며 엄마의 얼굴빛이 어두워지셨다. 설마 그럴 리가.

"아버지, 진짜 엄마 이름 몰라요?" 내가 물으니 역시나 "몰라"라고 말씀하시는 아버지를 보며 나는 크게 충격받았다. 아버지의 얼굴을 천천히 들여다보니 아버지는 이미 예전의 그 샤프했던 눈빛이 아니셨다. 수도꼭지 잠그는 방법을 잊으시거나 아침과 밤을 구별하시지 못 하는 일들이 점점 늘어나며 치매 증상도 더 심해지셨다는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니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지며 아파졌다. '아, 이렇게 돼 가는 거구나.'

언젠가는 가족의 얼굴도 잊어버리시는 때가 올 거라는 불안함과 함께 그런 아버지를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아직은 힘들고 벅차기만 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오늘은 친정아버지께서 넘어지셔서 엉치뼈에 금이 갔다는 전화를 받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다행히 심한 상황은 아니라 한숨 돌렸지만 아무래도 회복되려면 오랜 시간을 버텨내셔야 할 것 같다. 문득 걷는 것조차 힘겨워하시는 아버지의 굽은 등이 떠오르며 그 모습이 갈고리처럼 내 가슴을 후벼 판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며 '늦은 건 아니겠지, 기다려주시겠지'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그간 부족했던 딸자식 노릇을 이젠 제대로 해보고 싶다. 아버지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예쁜 딸로 머무르기 위해 오늘 저녁은 아버지 손을 잡고 능청스럽게 애교라도 부려봐야겠다.

"아버지, 기다려주세요. 오래오래 함께해요. 사랑합니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