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孔子)의 제자 유하게(柳下季)한테는 도척이라는 아우가 있었는데, 그는 도독 떼의 괴수(魁首)로 수많은 졸개를 거느리고 다니며 천하를 어지럽혔다. 그들이 지나가면 큰 나라에서는 성을 지키고, 작은 나라에서는 성안으로 난을 피할 정도였다.

공자는 친구 유하계의 동생이 천하에 흉악하기 짝이 없는 도적 떼의 괴수라는 것을 유하계는 물론 자신에게도 커다란 수치라며 도적을 설득하기 위해 산채(山寨)로 찾아갔다.

그러나 도적은 위선(僞善)을 비웃으며 만나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공자가 물러나지 않고 끈질기게 만나기를 청하자 공자를 불러들인 도적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네가 말하는 것이 내 뜻에 맞으면 살아남을 것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너는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도적의 험악한 기세에 늘린 공자는 그를 만나면 해주려고 했던 말은 꺼내지도 못하고 그의 비위만 맞췄는데, 공자의 비굴한 행동에 오히려 도적이 역겨운 표정으로 칼자루를 만지작거리며 공자의 위선적인 태도를 꾸짖었다.

설득은커녕 도적에게 일장 훈계를 다 듣고 나서야 허둥지둥 산채에서 빠져나온 공자는 얼마나 긴장했던지 수레에 올랐지만 세 번이나 고삐를 잡으려다 놓치고, 얼굴은 잿빛이 되어 수레 앞의 가로막대에 엎드려 숨도 쉬지 못할 정도였다.

공자가 간신히 가다듬고 돌아오는 길에 노(魯)나라 동문 밖에서 유하계를 만났다. 공자를 발견한 유하계가 반기며 말했다. “한동안 보이지 않더니 혹시 도척을 만나고 오는 길이 아닌가?” 그러자 공자가 하늘을 우러러 길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하계가 다시 물었다. “그래, 도척이 전에 내가 말했던 바와 같지 않던가?” “맞았네, 나는 이른바 병도 없으면서 스스로 뜸질을 한 격일세(무병이자구:無病而自灸) 허겁지겁 달려가 호랑이 머리를 쓰다듬고 호랑이 수염을 가지고 놀다가 하마터면 호랑이 아가리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뻔했다네.”

성어 무병자구(無病自灸)는 이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장자가 자신이 만든 우화(寓話)속의 주인공인 도척의 입을 통해 공자가 주장하는 예교주의(禮敎主義)의 위선을 통렬하게 공박한 것이다.

요즈음도 자기의 바른 의지를 잃고 상대의 비위만 맞추어 나가는 사람이 있기에 언제도 변치 않을 자기의 위상을 굳게 지켜야 한다.

<국전서예초대작가·청곡서실 운영·前 대전둔산초교장>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