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수 ETRI 기술상용화센터장

나태주 시인. ‘풀꽃’이라는 시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분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이 시에는 사람들이 서로를 겉모습이나 흘려 지나가는 모습으로만 평가해 버리는 세태를 안타까워하며 아무런 가치가 없어 보이는 풀꽃 같은 존재라 하더라도 그들만의 참다운 아름다움이 있음을 기억하며 살기를 바라는 시인의 마음이 잘 담겨 있다.

외양만 보면 참 볼품없어 보여서일까? 요즘 필자는 우리나라 경제를 보며 나태주 시인과 같은 마음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연말에 발표된 올해 경제 전망만 봐도 그렇다. KDI를 비롯해 우리나라의 경제를 분석하고 예측해 온 수많은 기관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대부분 2% 내외의 낮은 경제 성장을 전망하고 있다. 전년보다는 나아질 것으로 예측한 기관도 있지만, 그 외 다수의 발표는 대체로 비관적이다.

특히 수출의존도가 높고 다른 제조국가들에 중간재와 자본재를 공급하는 역할을 해온 탓에 세계 정치·경제의 불확실성과 경기둔화로 인해 더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기술혁신과 기술투자의 관점에서 볼 때도 마음이 편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세계 경제의 부진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예상은 당장 수익으로 연결하기 어려운 제4차산업혁명 관련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에서는 인공지능을 비롯한 제4차산업혁명의 기반기술들과 이를 통해 창출될 신산업들을 우리나라의 새로운 신성장동력으로 천명하며 전폭적인 지원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들이 당장 직원을 먹여 살릴 걱정을 뒤로하고 기술투자에 발 벗고 나서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기술의 수익화 시점은 이로 인해 정부의 기대보다 늦어질 수도 있다. 더욱이 인구의 고령화와 출산율의 저하는 국내에서 새로운 기술에 대한 개발과 소비 저하로 연결되면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경제가 어려워지니 투자도 줄이고 고용도 줄이고 소비도 줄이고 허리를 졸라매며 경제 상황이 좋아지는 시기를 마냥 기다릴 것인가?

하지만 그런 날을 기대하기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그동안 주장해 온 것처럼 제4차산업혁명은 시간과 속도 그리고 범위에서 이전 시대와는 확연히 다르다. 더는 후발주자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모든 것이 어렵게 느껴질 때, 반가운 보도를 접했다. 미국에서 개최된 세계 최대의 소비가전 전시회인 CES에서 한 언론매체와 인터뷰한 내용이었다.

“인공지능이나 모빌리티 기술들은 상당 부분 성숙기로 접어들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나, 많은 글로벌 대기업들이 이번 전시회에서 발표한 기술들은 내가 3년 전에 보았던 것들이다.”

아울러 인터뷰를 통해 진정한 개척자(First Mover)가 되기 위해선 제조 지향적 기업가정신을 털어 버리고 서비스 지향적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계 경제의 침체로 인한 기술투자위축으로 유수의 해외 대기업들도 기술혁신에서 큰 성과는 거두지는 못했고 정체된 국면에 있다는 것을 여실히 말해주는 대목이다.

정작 제4차산업혁명에 대응한 신기술개발에 분투하면서도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두려움으로 주춤하고 있는 우리에게 아직 늦지 않았음을 조금만 더 분발하면 기회를 잡을 수 있음을 확인시켜 줬다.

지금은 불확실성과 두려움으로 주저할 때가 아니다. 우리의 가능성과 저력을 믿고 힘을 모아 다시 일어서야 한다.

나태주 시인은 ‘풀꽃’이라고 이름 붙인 세 번째 시에서 우리 모두에게 이렇게 말한다. “기죽지 말고 살아봐. 꽃 피워봐. 참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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