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태 대전 서구청장

지난해 9월 아홉 살이던 김민식 군은 두 살 아래 동생의 손을 잡고 건널목을 건넜다. 길 건너 부모의 치킨집으로 가던 중이었다. 이때 차량이 형제를 덮쳤고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민식이는 끝내 눈을 뜨지 못했다. 사고가 난 곳은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이었지만 신호등과 과속단속카메라가 없었다. 2017년 10월에는 놀이공원 주차장에서 당시 네 살이던 최하준 군이 차량에 치여 숨졌다. 주차된 차량이 미세한 경사로에서 미끄러지며 벌어진 비극이었다.

지난해 12월 이들의 이름을 딴 민식이법과 하준이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민식이법 통과로 어린이 보호구역에는 신호등과 과속단속카메라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하준이법은 비탈진 곳 주차장의 미끄럼 방지 시설 설치를 골자로 하고 있다. 두 법은 지난해 통과됐지만, 어린이집 앞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해인이, 통학 차량 안에서 세상을 떠난 한음이, 사설 축구클럽 승합차 사고로 숨진 태호·유진이의 이름을 딴 법안은 해를 넘겼다.

관련 법안이 통과됐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운전자의 운전습관 개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음주운전 사고자의 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윤창호법이 통과돼 시행 중이지만, 음주운전자가 근절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스쿨존에 진입하면 속도를 30㎞ 이하로 줄이고, 불법 주·정차는 엄격히 삼가야 한다. 횡단보도 앞에서는 반드시 일시 정지 후 보행자를 확인해야 한다.

어린이들의 안전한 보행을 위한 지방 정부의 노력도 필요하다. 도로교통공단의 통계에 따르면 최근 3년 동안 대전 지역 스쿨존 어린이 교통사고는 총 45건으로 그중 서구에서는 14건 발생했다. 어린이 보호구역은 학교나 유치원 등 보호구역 지정 대상 시설을 기준으로 반경 300m 이내 구역에 설치된다. 글자 그대로 어린이를 교통사고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구간이다. 대전은 총 470개의 어린이 보호구역이 지정되어 있으며 그중 140개가 서구에 있다. 대전 5개 구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그만큼 할 일이 많다.

지난해 서구는 둔산동 학원가 교통 혼잡지역을 어린이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승·하차 배려 구역을 마련했다. 행정안전부의 지원을 받아 관내 9개 초등학교 주변 횡단보도에 LED 바닥 신호등을 설치했다. 특히 도마초 보행로 사업의 경우 학교 옹벽을 안쪽으로 옮겨 인도를 조성했다. 중앙 정부가 지원하고 대전시교육청과 서구청 등 지역 사회가 협력한 전국 최초의 모델로 평가받는다.

올해도 어린이 보호구역의 안전을 강화하기 위한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노력은 계속된다. 정부는 지난달 7일 열린 올해 첫 국무회의에서 어린이 보호구역 교통안전 강화대책을 발표했다. 스쿨존 통행속도 시속 30㎞ 이하 하향 조정과 주·정차 위반차량 과태료 상향을 골자로 한다. 서구 역시 탄방초 보행로 사업 등 등·하굣길 위험 지역 보도 설치를 지속해서 추진한다. 어린이 보호구역에 과속 단속 카메라와 속도표시 장치 등도 설치할 예정이다.

미국에서는 아이를 카시트에 태우지 않으면 운전자가 구금될 수 있다고 한다. 또 스쿨버스를 다른 차가 추월할 수 없고, 스쿨존에서는 24시간 서행, 수시 정지, 경적 금지 등을 준수해야 한다. 불편해도 이처럼 강력한 정책을 펼치는 것은 약자를 보호하고, 생명을 지키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기 때문이다. 민선 7기 서구의 비전을 ‘사람 중심의 함께 행복한 도시’로 정하고, 첫 번째 구정 방향을 ‘사람을 우선하는 행정’으로 삼은 것은 이러한 철학에서다. 어린 생명의 이름을 딴 법을 만들어야 하는 슬픈 일이 없기를 바라며, 어린이 교통사고 없는 서구 건설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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