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는 웁니다

▲ 아이클릭아트

☞예전엔 마냥 명절이 좋았다. 그땐 '명절=쉬는 날'이란 인식이 있었다. 아마 이번 설도 누군가는 마냥 행복할 것이다. 나도 그랬다. 결혼 전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난 이제 며느라기가 됐다. 벌써 3년 차다. 고로, 세 번째 맞는 설이다. 첫해는 '새색시 실드'로 어찌어찌 흘러갔다. 두 번째 해는 1월에 태어난 효자(?) 아들 덕에 산후조리원에 있었다. 그리고 세 번째 해인 올해다. 더 이상의 변명은 안 통한다. 설거지 팀장만 하기엔 일이 너무 많다. 벌써 식은땀이 흐른다.

☞우리 시댁은 큰 집이다. 1년 제사만 12번이다. 명절엔 대가족이 모인다. 작은 할아버님, 할머님들도 오신다. 차례 음식은 물론, 그냥 음식 준비도 해야 한다. 어머님은 명절 당일이 다가올수록 말씀이 없어지신다. 어쩔 땐, 결투를 앞둔 전사의 마음도 느껴진다. 서투른 며느리인지라 늘 죄송하다. 도와드리고 싶어 옆에서 깔짝대면 쉬라고 하신다. 어머님은 어린 나이에 시집오셔서 많은 일을 해오셨다. 제사도 그중 하나다. 내겐 제사를 물려주지 않겠다고 늘 말씀하신다. 교회에 다닐 거라고 농담도 하신다. 맏며느리인 엄마와 어머님을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때론 명절을 없애고 싶다.

☞차례 음식은 상상초월이다. 전, 나물, 탕국 등 수십 가지가 올라간다. 남편의 본가는 충청도다. 고로 독특한 놈도 하나 올라간다. 바로 '계적'이다. 닭을 머리까지 삶아 올린다. 머리를 고정하기 위해 간혹 이쑤시개도 쓴다. 다른 집에선 그 닭 위에 옷처럼 지단도 올린다고 한다. 어찌 됐건, 그 형상은 언제 봐도 놀랍다. 처음엔 충격적이었다. 우리 친정은 참고로 본가가 경상도라 문어를 올렸었다. 닭 올리는 건 시집와서 처음 봤다. 이것도 원래 닭이 아니라 꿩을 올리는 거란다. 꿩 없으면 닭, 닭 없으면 계란을 올리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꿩 대신 닭'이란 말도 여기서 나왔다나 뭐라나.

☞명절이 싫은 사람은 며느리 말고 또 있다. 결혼을 안 한 총각·처녀다. 미혼인 우리 오빠도 아마 그럴 거다. 가장 듣기 싫은 명절 잔소리에 "결혼해라"라는 꼭 있다. "취업해라", "살 빼라"라는 자매품이다. 잔소리를 듣다 보면, (1)취업을 한 뒤, (2)살을 빼서 (3)결혼을 해야 할 것만 같다. 이게 마치 성공의 시나리오 같다. 오지랖 넓은 친척들은 매년 자꾸 미션을 준다. 하지만 때론 입 밖으로 안 꺼내는 게 좋은 말들이 있다. 안 해도 좋을 걱정이 있다. 관심 대신 무관심이 나을 때가 있다. 이번 명절엔 서로 무관심을 보여주는 게 어떨까. 대신 그 오지랖, 불우이웃에게 좀 씁시다.

편집부 김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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