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래 대전장로교회 담임목사

사람은 날마다 거울 앞에 서기를 좋아하고, 하루라도 유리와 거울을 멀리할 수 없다.

거울을 보지 않고 외출하면 불안한 마음을 갖게 되고 부끄러움을 당하기 쉽다.

그런데 우리가 날마다 대하고 있는 유리와 거울의 차이는 무엇일까?

유리는 앞이 잘 보인다. 자신의 모습은 볼 수 없고 유리 밖의 남의 모습만 잘 보이게 된다.

그러나 거울은 오르지 자신의 모습만 바라볼 수 있다.

똑같은 유리인데도 뒤에 수은이 발라졌기 때문에 거울에는 내 모습만 보이게 된다. 그러나 유리는 상대방 모습만 볼 수 있다.

자신은 바라보지 못하고 남의 모습만 바라보며 그를 평가하고 불평하길 좋아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기에 예수께서도 말씀하시길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라고 하셨다. 삶의 바른 기준을 가지라는 교훈이 담겨 있는 말씀이다.

오늘 우리 사회에는 거울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유리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감사의 말보다는 원망의 말이, 위로의 말보다는 비난과 저주의 말들이 범람하고 있다.

이웃을 칭찬하는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말보다는 이웃에게 상처를 입히는 부정적인 말들로 가득 채워가고 있다.

유리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의 책임은 생각도 않고 다른 사람들의 약점이나 허물만 들춰내 비난하고 불평하길 좋아한다.

그러나 거울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남의 약점을 바라보고 원망과 불평하기보다 항상 자신을 먼저 돌아보며 성숙한 삶을 위해 노력한다.

어느 작은 시골 성당에서의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성직자의 꿈을 가진 한 소년이 성당에서 신부를 도와 성찬예식을 돕는 일을 하게 됐는데 어느날 소년은 실수로 제단의 성찬용 포도주 그릇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화가 난 신부는 실수로 풀이 죽어있는 소년에게 다시는 제단 앞에 오지말라고 큰 소리로 야단첬다.

이 때 충격을 받고 마음에 상처를 입은 소년은 성직자가 되는 길을 포기하고 공산주의자가 됐는데 그가 바로 유고슬라비아의 독재자 티토 대통령이다.

한편 다른 도시의 성당에서 한 소년이 같은 실수를 저질렀다.

이 때 신부는 미소를 지으며 처음에는 다 그렇게 실수를 하는 거란다 하면서 따뜻한 말로 위로했다.

그 소년은 장성해 유명한 영적지도자인 훌톤 쉬 대주교가 됐다.

한 마디의 부정적인 꾸지람의 말과 긍정적인 위로의 말이 얼마나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이야기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의 위력은 한 사람의 인격과 생명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힘을 갖고 있다. 국민들의 여론을 주도하는 언어의 위력은 나라를 흥하게도 하고 망하게도 할 수 있다.

요즘 정치계에서 흘러 나오는 말들을 보면 모두가 '잘못은 네 탓이요'하면서 '내 탓이요'하고 책임을 지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정치가 불안해 국민들의 맘에 근심과 불안만 가중시키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서로 협상하고 타협하면서 공동의 번영을 위해 선한 경쟁을 하는 모습이 없어 아쉽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모두가 진정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거울 앞으로 다가서길 소망해 본다.

거기에 국가의 미래가 있고 희망이 있고 번영이 있고 평화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유리인생을 살아가면서 남의 탓만 하며 이웃과 나라에 상처를 입히는 일에 오염돼 있는 것 같다.

우리 모두 유리인생에서 거울인생으로 거듭나자. 진정 변화된 모습으로 새해를 맞아 보자.

그래야 정치가 살고 교육이 살고 경제가 살고 나라가 살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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