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천 대전시의회 의장

올 겨울은 유난히 따뜻하게 보내는 것 같다. 예년 같으면 몇 번이나 찾아왔을 법도 한데, 소한(小寒)과 대한(大寒)이 지나도록 추위는 큰 기별이 없었다. 우리나라 겨울철 날씨를 상징하는 삼한사온(三寒四溫) 현상도 자취를 감춘 지 꽤 오래다.

대표적인 겨울 손님인 큰 추위가 없고 눈다운 눈도 내리지 않으니, 겨울이 겨울답지 못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번 겨울은 소리 없이 왔다가 조용히 물러갈 모양이다.

매년 찾아오는 큰 추위가 주춤해서일까? 겨울 한파가 밀려오지 않는 대신 애먼 곳에서 한파가 밀려왔다.

나눔과 기부가 예년보다 더 얼어붙은 것이다. 어려운 경제를 반영하듯, 개인은 물론이고 평소 나눔에 앞장섰던 기업들의 후원마저도 줄었다고 한다. 온정이 줄어들면서 기부한파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이처럼 어려운 이웃들은 따뜻한 겨울날씨 속에서도 오히려 가장 매서운 한파를 견디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해마다 들려줬던 훈훈한 단골뉴스 대신 황당한 소식도 있었다. 연말이면 전북 전주의 한 주민센터에 얼굴 없는 기부천사가 성금과 편지를 두고 사라진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너무 유명해져서인지 다소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어김없이 나타난 기부천사의 성금을 도난당한 것이다. 다행히 모든 성금을 되찾았지만, 이웃을 위해 베푼 순수한 기부금마저 범죄의 표적이 된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사실 우리사회는 어려운 경제사정과 그동안 알려졌던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사건들로 인해 기부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약해지고 마음도 점점 닫히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범죄까지 발생해, 그렇지 않아도 줄어들고 있는 나눔 문화가 더욱 움츠러들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그러나 주위를 자세히 살펴보면 알게 모르게 도움이 필요한 어려운 이웃들이 많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대전의 기초생활수급자와 등록 장애인은 13만 명(2018년 기준)에 가깝다. 여기에 홀로 사는 어르신과 한 부모 가정, 정확한 수조차 파악이 어려운 경제적 위기 가정까지 더하면 훨씬 많아질 것이다.

그중에서도 정부나 지자체에 등록되지 않은 취약계층은 기본 생활 유지를 위한 정부 지원조차도 받을 수 없다. 때문에 보이지 않는 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이들은 갑작스런 경제적 위기를 맞은 가정이 대부분으로, 주위에서는 당사자들의 어려움을 눈치 채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평범했던 가정에 찾아온 위기상황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취약계층이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일까지 발생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추석을 앞두고 발생한 일가족 사망 사건, 새해를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에 발생한 4살 아이 사망 사건이 그렇다. 이러한 안타까운 사건은 우리 사회가 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부족했는지, 공동체문화가 얼마나 약해졌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도움이 필요한 이웃은 없는지 한번쯤 주위를 둘러보는 관심과 배려가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아무리 평년보다 따뜻해도 어려운 이웃에게 '겨울'은 똑같은 '겨울'이다. 그리고 우리는 나눔으로 겨울을 더욱 따뜻하게 보낼 수 있다. 해마다 겨울철이면 사랑의 온도탑이 세워지고 거리에 구세군의 종소리가 울리며 연탄 나르기 봉사와 기부가 이어지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일 것이다.

민족의 대명절 설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과 친구, 친지들을 볼 생각에 너나없이 설레는 때가 바로 지금이고, 어렵고 소외된 이웃들이 더욱 쓸쓸해지는 때도 지금이다. '콩 한 쪽도 나누어 먹자'는 옛 속담처럼 나눔은 작은 것부터 시작한다. 얼마 남지 않은 이번 겨울에는 떡국 한 그릇도 나눠 먹는 온정과 덧셈보다 뺄셈의 지혜를 아는 이웃이 더욱 많아지길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