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우 YTN 충청본부장

기국비국. '이 나라는 나라가 아니다'라는 뜻이다. 반어법으로 표현하자면 '이게 나라냐?'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다. 나라가 나라가 아니라니?

이 말은 왜군의 침입을 피해 도성과 백성을 버리고 북으로 도주했던 조선 시대 선조에게 이이 율곡 선생이 선조의 도주 전 올린 상소문에 나오는 말이다. 그는 1571년 청주 목사로 관직에 올랐다. 이듬해 해주로 낙향했다가 그다음 해 경기도 파주 율곡 촌으로 거처를 옮겼다. 짐도 풀기 전 1573년 조정의 부름을 받아 승정원의 동부승지(同副承旨)·우부(右副)승지를 맡았다.

궁궐로 돌아와 보니 극심한 당쟁으로 나라는 망신창이로 꼴이 말이 아니었다, 임금 역시 수수방관이었다. 급기야 총대를 멨다. 1574년 만언봉사(萬言封事)를 지어 선조에게 올렸다. '만언봉사'는 장문의 글로 임금만 보는 상소문이다. 이것에 '후부일(朽腐日) 심지대하(深之大厦) 기국비국(其國非國)'이 나온다. "날로 날로 더 깊이 썩어가는 빈집 같은 이 나라는 지금 나라가 아닙니다"

이이의 상소문을 시민들이 442년이 지난 박근혜 정부 때 환생시켰다.

'기국비국' 말이다. 국정을 농단한 박근혜와 그 패거리들을 비난하며 촛불을 들은 시민들은 '이게 나라냐'며 목청을 높였다. '박근혜 OUT'과 구국을 위한 집합행동, 촛불집회를 활성화하는 안성맞춤의 레퍼토리(repertory)였다. '이게 나라냐'의 구호는 집회 참여자에게는 더욱 더 참여의식을 강화했고, 비참여자들에게는 촛불집회에 비공간적 참여를 유도했다.

불행히도 또다시 '기국비국'이 부활하고 있다. 나라가 온통 보수와 진보의 두 진영논리로 브레이크가 고장 난 채 무한 질주하고 있다. 50대 50의 사회가 됐다. 어느 쪽도 양보가 없다. 좌우의 흑백논리가 판치고 있다. 흑백논리는 상호 질시, 비난, 반목, 부정이 근간이다. 곳곳에서 '이게 나라냐'라고 소리 없는 아우성이 메아리치고 있다. "위정자들아, 이건 진정 나라가 아니다” 더 개탄하고 통탄할 일은 그 책임을 날개 잃은 백성들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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