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태 대전 문지초등학교 교사

H를 처음 만난 것은 그가 4학년이던 제작년이었다. 우리 반 학생들의 보건수업으로 인해 빈 보건실을 한 시간 맡게 됐다. 보건실의 정적을 깨고 H가 등장했다. 처음 보는 나를 신기해하며 누구냐고 아주 당돌하게 물어보던 H. 발목에 감은 붕대가 자꾸 풀려서 짜증난다며 나보고 다시 감아달라고 했다. 정성스레 붕대를 감아줬더니 이후에 몇 번이고 찾아오길래 수업시간에 계속 돌아다녀도 되냐고 물었더니 선생님이 왜 참견이냐며 나를 쏘아보던 H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다.

나는 본교에서 몇 년째 근무하시는 한 선생님으로부터 그 학생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 ADHD 증세로 약을 복용하고 있으며 자의식이 낮고 반항심이 큰 편이며, 가정에서 케어를 많이 받지 못하고 있는 등의 사항을 알 수 있었다. 그 이후로 그 학생을 눈여겨볼 일이 많아졌다. H가 5학년이 되는 2019학년도, 그의 담임은 내가 됐다. 그렇게 우리들의 2019학년도는 시작됐다.

새 학년, 일주일간의 폭풍이 지나가고 새로운 아이들과 새로운 교실에 적응돼 갈 즈음, H의 활동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수업시간에 친구 물건을 허락 없이 가지고 도망간다든가, 화장실 간다고 나가서 교실에 들어오지 않고 학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행동, 친구와 말다툼을 하다 얼굴에 침을 뱉는 행동 등을 일삼았다. 그러한 행동에 대해 주의를 주더라도 정말 그 순간뿐, 개선의 여지는 크지 않아 보였다.

어느 날 H가 빈 옆 반 교실에 들어가 물건에 손을 댔다. 너무나 속이 상한 옆 반 친구들이 몰려와 H를 다그쳤다. H는 빨갛게 얼굴이 상기돼 증거를 내놓으라며 욕설로써 고독한 항쟁을 했고, 돈을 잃어버린 몇몇의 학생은 속이 상한 나머지 눈물이 그렁그렁 했다. 나는 선생님이 책임지고 없어진 돈을 찾아 주겠다며 피해학생들을 교실로 돌려보냈다.

조용한 교실로 H를 불렀다. 선생님에게마저 진실을 숨긴다면 너를 절대 도와줄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순순히 자백할 H가 아니다. 세상 가장 억울한, 마치 나라 잃은 듯한 서러움의 포효와 함께, 내가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아 기분이 나쁘다고 욕을 하며 교실 문을 걷어차 버리고 나갔다. 하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다음날 다시 H와의 대화를 시도하였다. 빈 교실에 들어가는 널 봤다는 목격자의 진술내용에 대해 말하자 또다시 화를 내기 시작한다. 전날보다 더욱 세게 교실 문을 걷어차고 심한 욕설을 퍼붓고 교실을 나갔다. 그날 밤 참 많은 생각에 잠이 오질 않았다.

다음날, 오늘은 이 논쟁의 끝을 보겠다는 마음으로 H와 대화를 시도하였다. 왜 또 짜증나게 자기한테 그러냐며 소리 지르는 H의 손을 나는 꼭 잡았다. 그리고 학교 한 바퀴만 돌고 오자는 제의했다. 약간 의아해하며 H는 나를 따라나섰다. 우리는 손을 꼭 쥔 채로 운동장을 걸었다. 그게 싫지는 않았는지 H는 집에서 있었던 일을 재잘거린다. 아빠가 술 마시고 물건을 막 집어던졌다는 얘기, 새벽에 들어오는 엄마를 기다리면서 핸드폰 게임을 했다는 얘기 등등… 그리고는 산책이 거의 끝나갈 무렵, 비밀을 하나 말해준단다. 돈을 가져간 게 자기라고. 아빠만 모르게 해달라고 간청을 했다. 본인도 요 며칠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은 것 같다.

하고 싶은 말은 참 많았지만 나는 말을 더 하지 않았다. 손만 더 꼭 잡아주었을 뿐… 이후 어머님이 학교에 오셔서 이 일은 원만하게 처리되었다. 지금의 H는 여전히 무단지각을 하고, 수업을 방해하는 행동을 하며, 선생님들에게 대드는 행동을 하고 있다. H 때문에 힘들 때도 많지만, 그래도 날 믿고 따르는 천사 같은 우리 반 아이들과 늘 옆에서 도와주시는 동료 선생님들 그리고 늘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시는 교장선생님 덕분에 씩씩하게 헤쳐나가고 있다.

나의 방식이 최선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신할 수 있는 것 한 가지는 바로 일 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내며 우리는 우리만의 소통 방법을 찾았다는 것이다. 이를 무기 삼아 나는 앞으로도 H와 소리 없는 전쟁을 펼치며 지혜롭게 싸울 것이다. 나는 H가 앞으로 더욱 좋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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