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엔디컷 우송대학교 총장

경자년(庚子年), 쥐의 해이다. 필자가 바로 쥐띠인데 며칠 전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다. 똑똑하고 사랑스러우며 깨끗한 애완동물을 원하는 이들에게 쥐를 키워보라는 내용이었다. 동양에서 쥐는 서양에서만큼 나쁜 이미지는 아닌 모양이다. 12간지의 첫 번째 상징이 쥐로 쥐띠인 사람은 매우 부지런하고 절약가이며 남들이 모르는 곳에서 노력하고 참을성이 대단하다는 글을 읽었다. 내가 쥐띠인 것이 행운이라고 느꼈고 평화롭게 새해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 평화를 걱정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번 중동에서의 충돌은 서로의 이해관계가 얽힌 일이라 미국 젊은이들은 더 큰 전쟁으로 번지지 않을까 우려했고 한국 역시 긴장의 파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다행히 일촉즉발의 대립 상황이 잦아들었지만 갈등의 상황은 늘 그런 공습에 대비해 대피 훈련을 한다. 타국에서 보면 북한과 가장 가까운 남한 사람들은 어떻게 저런 태연한 모습으로 잘 사는지 의아해할 정도다.

필자도 긴 세월 이곳에 살다보니 그런 모습에 자연스럽게 물들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살면서 마음의 평화를 위협하는 요소 2, 3개는 늘 있어왔다.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해 남들보다 더 방황하고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볼 일이다.

천주교에서는 ‘평화를 빕니다’라는 말로 서로의 삶을 기원한다. 누군가 나에게 ‘평화를 빕니다’라는 말을 하면 잠깐 동안이라도 내 몸 구석구석 평화가 깃드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나 부처는 ‘그대의 부모도, 그대의 배우자도, 그대의 절친한 친구도, 그대에게 잘 훈련된 마음만 한 평화는 가져다주지 못한다’고 했다. ‘내게 강 같은 평화’에 발을 들이는 것은 참 어렵다. 누구나 쉽게 흔들리지 않는 평화를 원하지만 누가 주는 것이 아니다. 오랜 훈련과 굴곡진 경험과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고 난 후 그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내공이 있어야 비로소 내 마음의 평화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통과 슬픔이 없는 삶은 없다. 충분히 힘들었다면 ‘그래, 이제 벗어나야지’하는 자각과 용기도 필요하다.

내 마음을 평화로 인도하는 길이기도 하다. 새해엔 내 마음의 평화를 최우선 순위에 두면 어떨까? 평화는 사회가 만들어 놓은 중요하지 않은 가치보다는 내가 옳다고 여기는 가치를 알아보는 눈이 생기게 한다. 평화는 창의적 생각, 영감을 선물한다. 중대한 결정 앞에서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한다.

내적 평화가 주는 선물은 이렇게 많다. 새해의 복을 기다리는 수동적 자세가 아닌 복을 가져오는 능동적 자세가 되는 것이다.

쥐와 관련된 기사를 더 읽어 보니 쥐가 먹이를 모아 놓는 습성 때문에 ‘쥐띠가 밤에 태어나면 부자로 산다’는 내용이 있었다. 필자가 언제 태어났는지 무척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쥐띠인 분들은 어머니께 전화해서 언제 태어났는지 확인이 필요할 것 같다. 또 쥐띠는 풍요와 희망, 기회의 상징이기도 하다. 평화로운 새해에는 새로운 희망을 걸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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