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호 대전 동구청장

올해는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이자 대전 산내 곤룡골에서 민간인 학살이 일어난 지 70년이 되는 해다.

7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 산내 곤룡골 민간인 학살의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못하고 있다.

수많은 민간인들이 아무런 재판도 없이 초등학교 운동장이나 산기슭에서 처형됐다. 모두 영문을 모른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누가 죽었는지, 누가 죽였는지, 왜 죽어야만 했는지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어느 누구도 진실을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최대 7000여명이 학살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곳에서 현재 발굴된 유해는 불과 52구. 이런 상황에서 2년 전 대전 동구가 행정안전부, 대전시와 협약을 통해 산내 곤룡골에 전국단위 위령시설 조성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는 소식은 당시 희생자 유족들에게는 오랜 염원을 담은 한줄기 빛과도 같았다.

산내 곤룡골은 한국전쟁 초기 보도연맹원과 대전형무소 재소자 등 약 7000명이 6월 28일부터 7월 17일까지 3차례에 걸쳐 희생당했던 장소다. 학살사건 이후 희생자 유족들은 가족을 잃은 박탈감으로 인한 후유증, 경제적 핍박, 신원조회 등의 불이익을 당해왔으나, 자신들의 처지를 하소연하지도 못했다.

이렇게 진실은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그대로 묻혀 있을 것만 같았다. 2005년 12월 1일 광복이후 반민주적 또는 반인권적 인권유린과 폭력 학살 의문사 사건 등을 조사해 은폐된 진실을 밝히기 위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가 출범해 3년간 유품, 유해발굴을 진행해 낭월동에서 유품 6020점, 유해 1617구를 발굴하고 2010년 해산됐다.

이후 2011년 과거사심의위원회에서 진화위의 권고사항이었던 전국단위 위령시설 조성을 결정하여 2012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시설 조성방안 연구' 용역을 실시했고 사업비는 약 518억 원으로 산정됐다. 2016년 사업부지 선정을 위해 1·2차 공모결과 4개의 지방정부(대전 동구, 강원 철원군, 강원 양구군, 전남 영광군)에서 7개의 후보지를 응모했다.

같은 해 8월 대전 동구 낭월동이 사업부지로 최종결정됐고 사업비가 295억원으로 조정됐다. 이후 사업비를 증액하기 위해 지난해 3월 기획재정부에 총사업비를 406억원으로 증액 요청해 같은 해 12월 총사업비는 402억원으로 확정됐다.

올해는 사업부지 매입, 유해 발굴과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위령시설 조성방안 확보를 위한 설계공모가 추진될 예정이다.

지난 시기 분단과 전쟁의 폐허를 딛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급속 성장의 신화가 오늘의 불균등한 현실 앞에서는 빛을 잃고 있으며, 기존의 인식과 대처방식으로는 오히려 악순환만 거듭되고 있는 형편이다. 인권과 복지, 평화와 통일은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는 시대적 가치로 부각되고 있으며, 모든 영역에서 경쟁과 대결의 논리를 넘어 화해와 평화를 모색해야 한다.

2018년부터 오는 2024년까지 추진되는 곤룡골에 세워질 산내평화공원 조성사업은 누군가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꿨던 역사적 사실을 시민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할 것이며, 과거와의 화해와 오늘날 평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필자는 희생자 유족뿐만 아니라 누구나 가족단위로 평화공원을 방문해 희생자들을 위로할 수 있는 화합의 산내평화공원을 그린다. 이를 통해 영문 없이 스러져간 희생자들의 넋을 조금이나마 기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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