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선기 청주시 도시재생기획단 주무관

지난해 청주시 도시재생의 화두는 단연코 '담배공장'을 '문화제조창 C'로 재탄생시킨 것이었다. 이는 전국적인 모범 사례가 됐고 이로 인해 청주시 도시재생의 위상은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명성에 걸맞게 문화제조창C를 찾는 방문객도 많아지고 있는데 그들이 문화제조창C를 찾아오는 마지막 길목에는 일명 '밤고개'가 자리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이 일대에는 '방석집'이라 불리는 유흥업소가 즐비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청주 문화의 진수를 느끼러 오는 대부분의 외지인은 밤고개 유흥업소를 지나쳐야만 비로소 문화제조창C에 닿을 수 있다. 밤이 아니래도 유흥업소의 화려한 간판은 이곳이 평범한 곳이 아님을 미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청주시 입장에서도 어렵사리 문화제조창C라는 옥동자를 낳았는데 밤고개 유흥업소는 그 의미를 퇴색시키는 '옥에 티'와도 같은 존재였다. 물론 이곳을 정비하기 위해 많은 고민과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책은 제시되지 못했다. 그런 시행착오 끝에 꺼내든 카드가 도시재생 차원에서의 밤고개 유흥업소 정비였다.

지난해 청주시 도시재생기획단에서는 밤고개 정비를 위해 중앙부처를 설득하고, 국비를 지원받고, 시비를 보태는 과정을 거쳤고 밖으로는 주민들과 유흥업소 업주들을 일일이 만나면서 설득과 협의의 시간을 보냈다. 보상이라는 업무의 성격상 관(官)의 목적과 민(民)의 기대 심리가 상충하면서 많은 갈등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공무원의 입장에서 대할 때 생긴 주민과의 대립·갈등은 역지사지의 자세로 주민을 대하면서 간극이 메꿔지고 갈등을 서서히 녹여낼 수 있었다. 생각과 시각을 달리하니 그저 유흥업소 많고 어둡고 슬럼화된 지역으로만 생각됐던 이곳이 누군가에게는 삶의 애환과 추억이 어린 소중한 공간임을 깨닫게 됐다. 지역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진 것이다.

이곳 주민 중에는 고개 너머 담배공장을 다셨던 분들이 많았다. 그분들과의 첫 만남은 "보상이고 뭐고 필요 없으니 그냥 가만 내버려 두라"라는 식의 경계심으로 시작됐다. 그러다 차츰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들을 끄집어 내어보니 이구동성으로 하시는 말씀이 "남들이 보기엔 어둡고 그늘진 곳이지만 밤고개는 삶의 소중한 터전이다. 그래서 이곳을 떠날 용기가 나지 않는다"라는 것이었다. 아흔다섯의 어르신은 이곳에 담긴 추억을 회상하시며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하셨다.

민요 '아리랑'은 민초들의 한(恨)과 넋두리가 담긴 노래이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라는 노랫말에서 느껴지는 한과 넋두리가 불현듯 밤고개에서도 느껴진다. 담배공장에서 지친 몸을 이끌고 고개 너머 사랑하는 가족이 기다리는 삶의 휴식처로 향했던 많은 사람의 한과 넋두리가 바로 밤고개 고갯마루에도 서려 있었다.

정겨웠던 이웃이 하나, 둘 떠나고 빈집들이 늘어나면서 어느샌가 밤고개의 빈자리를 유흥업소가 대신했다.

이제 밤고개는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처음에 반대했던 많은 주민이 어렵게 결단을 내리면서 "부디 이곳을 소중한 추억이 서린 원래의 밤고개로 만들어달라"라고 부탁했다. 애써 외면하고 싶은 밤고개가 아닌 담배공장 사람들의 추억이 묻어나고 문화의 향기가 그윽해 보고 또 보고 싶은 곳, 가고 또 가고 싶은 곳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사명감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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