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봉 시인·효문화신문 명예기자

한 인간에게 주어지는 행복과 불행의 양은 일정하지 않다. 그것은 온전히 자기가 만든 것인데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나이 들어까지도 불행의 양이 많다고 불평하며 슬픔에 젖어 있는 사람이 있다. 세상 얼마 살지도 않았는데 꿈을 내던지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 세상은 꿈꾸는 자의 것이라는 진리를 외면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이런 말을 한다. '당신은 상처받기를 두려워할 만큼 아직 늙지 않았다. 멀리 뛰기를 못할 만큼 다리가 허약하지 않다'라고….

행복과 불행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엊그제는 구십이 넘은 분과 대화를 나눴다. 대화 도중에 “아, 이제 살 만큼 살고 세상이 재미도 없어 죽어야지”라고 했다. 그래서 물었다. “진짜로 돌아가시고 싶으냐?”고. 그랬더니 “그냥 해본 소리야.” 이러셨다. 사람은 구십이 넘어도, 백이 넘어도 세상과 작별하고픈 생각은 없다. 하루라도 더 살고 싶은 게 사람의 공통된 욕망이다.

세상에 3대 거짓말이 있다는 걸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노인들은 '아, 이제 그만 살고 싶다'고. 처녀들은 나 '시집 안 가요'이고. 장사꾼들은 '나는 밑지면서 판다'라고 한다. 하나 더 추가한다. 남자가 결혼 전에 여자에게 '결혼하면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해 준다'는 말이다. 뻔한 거짓말이다. 겉과 속이 다른 표현을 쓴다.

포기는 배추를 세는 단위가 아닌가. 아직 포기하기는 이르다. 이 아름다운 세상, 좀 더 멋진 삶을 구가해야 한다. 당신은 우산과 비옷으로 자신을 가려야 할 만큼 외롭거나 비판적이지도 않다. 또 무엇보다 당신의 시력, 눈은 별을 바라보지 못할 만큼 나쁘지도 않다. 거기다 건강한 신체를 갖고 있다. 부모님이 주셨든, 조물주가 주셨든 당신의 몸은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건강한 육신을 선물로 받고 왜 주저하는가? 용기를 내자. 할 수 있다. 안 되면 되게 해야 한다. 포기는 이르다. 포기는 아주 못난 사람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이다.

당신에게 필요한 건 단 한 가지 마음을 바꾸는 일이다. 마음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옛 노트에 적어보는 일이다. 생각을 바꾸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사고가 바뀌고, 사고가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

그래서 나는 세상을 밝게 보기로 했다. 어두운 곳은 될 수 있으면 보지 않기로 했다. 잘 웃는 친구를 만나 밥을 같이 먹고, 건강을 위해 매일 꾸준히 운동하는 친구를 만난다. 하루 한 번 이상 좋은 일을 하고, 열 번 이상 이웃을 칭찬하고, 100자 이상 쓰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리고 하루 1000자 이상 읽으며, 1만보 이상 걷기를 생활화하고 있다. 그러니 하루하루가 즐겁다. 좋게 보면 볼수록 세상은 아름답고, 그 반대면 지옥과 같은 세상이 된다.

당신은 할 일이 있다. 당신이 한때 가졌던 그리고 아직도 당신 가슴속에 작은 불씨로 남아있는 그 꿈을 실현시키는 일이다. 한쪽 문이 닫히면 언제나 다른 쪽 문이 열리게 돼 있다. 문이 닫혔다고 실망하는 당신에게, 다른 쪽 문을 찾아보기를 두려워하는 당신에게 앙드레지드는 말했다. "지상에서 아무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부단히 변화하는 것들에게 영원한 열정을 갖고 살아가는 자는 행복하여라"라고….

그렇지 않은가? 문이 닫혔다면 어찌해야 하나? 휴대폰이 없으니 곤란하겠다. 게다가 문이 닫혔으니 전깃불도 없겠다. 어찌하면 좋을까를 생각해 최적의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문을 두드린다든가, 소리를 지른다든가 하는 방법들이 있을 터이니 지쳐 쓰러질 때까지는 위의 행동을 지속해야 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있다. 계속 시도하다 보면 하늘도 도움을 주실 것이다.

당신의 삶은 당신이 창조해야 한다. 다른 그 누구도 당신을 대신할 수 없다. 불면의 밤을 헤치고 자기 자신과 대면하고 있는 당신은 창조적인 사람이다. 평상적인 삶을 두려워하지 않는 당신은 그 어떤 고난도 이겨낼 수 있는 지혜가 있다. 찬란한 아침 햇살이 나와 당신의 정수리에 내려앉았다. 힘찬 하루를 열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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