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윤석 을지대학교병원 산부인과 교수

‘무항산무항심’ 즉 ‘항시적인 생산이(항산) 없으면 바른 마음(항심)을 견지하기 어렵다’는 말로 퇴임한 대법관이 편의점을 운영하다 로펌으로 되돌아가며 한 말이다. 먹고 사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농경 시대의 항산은 토지였고, 산업화 시대는 부동산과 일자리였다.

여기서 항심이 나왔다. 그렇다면 10년 후 인공지능 세상에서 항산과 항심은 어디에서 나올까?

2014년 미국 골드만삭스에 인공지능 ‘켄쇼(kensho)’가 입사했다. 켄쇼는 먹지도 자지고 않고 24시간 천재 수준의 집중력을 유지하며 일했다. 그 결과 연봉 30억을 받던 직원 598명이 해고됐다. 켄쇼는 고용 없는 성장(Jobless Economy)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보여줬다. 인공지능 시대의 항산은 부동산과 일자리가 아닌 인공지능 자체다. 인공지능을 만들거나, 인간 고유의 능력을 가진 사람만이 가진다.

그렇지 못한 99.997%는 무항산 무항심의 ‘프레카리아트(precariat)’라는 노동자가 된다는 주장도 있다. 이는 불안한(Precario) 노동자(Proletariat)라는 뜻의 합성어다. 인공지능의 진행은 프레카리아트의 급증, 사회적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 이런 우려에 마크 저커버그, 빌게이츠 등은 로봇세, 모든 국민들에게 현금을 주는 기본소득을 주장한다. 하지만 이미 인공지능을 가진 이들로 미래 역시 0.003%의 극소계층이 되겠다는 야심을 보여준다.

인류 역사는 형태만 다를뿐 본질적인 흐름은 반복된다. 신기술의 등장에는 항상 버블과 규제가 있었다.

19세기 산업혁명의 버블 속에 자동차 산업이 일어나자 구 경제인 마차를 살리고자 자동차를 규제하는 ‘붉은 깃발법’이 생겼다.

지금은 구 경제인 제조업에서 신 경제인 4차 산업으로 전환되는 변혁기다. 추락하는 구 경제를 살리면서 신 경제인 인공지능을 일으키기 위해 버블과 규제가 공존한다.

미국은 최장, 최대의 버블을 만들어 4차 산업의 부흥을 통해 유례없는 완전고용을 이룩하면서 인공지능 기술 패권을 노리고 있다. 중국도 미중 무역전쟁 속에서도 기술 굴기만은 포기하지 않고, 유럽 또한 구글에 디지털세를 부과하는 등 총칼 없는 전쟁에서 물러섬이 없다.

한국도 버블 경제에 올라 탈 수 밖에 없고 구 경제도 살려야 한다. 하지만 10억 아파트가 20억이 되는 부동산 버블이 생기고 인공지능 시대를 준비하는 역동성은 떨어지고 있다. 버블은 양날의 칼이다. 버블은 모두의 부가 증가되는 착시현상을 일으키지만, 결국 부의 양극화를 초래한다. 구 경제 살리기에 매달리다 10년 후 인공지능 시대를 움켜잡지 못하면 고용이 없어지는 인공지능 시대에 무항산의 프레카리아트가 양산되면서 초 양극화 사회를 맞이할 수도 있다.

10년 후 인공지능을 지닌 국가는 어떠할까? 과거의 OPEC국가가 무한 생산의 석유로 국민의 부를 이끌었던 것처럼 인공지능에서 뿜어 나오는 엄청난 부와 로봇세만으로도 무항산이지만 항심이라는 새로운 맹자 왈, 무항산, 카르페 디엠(carpe diem) 시대가 될 수 있다. 물질적 조건에 집착하지 않는 내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면서 그 안에서 나의 시간을 확보하고 온전한 나를 찾겠다는 것, 이것이 카르페 디엠이다. 한번 사는 인생, YOLO(You only live once)가 승화되는 2030년 버전이다.

한국 경제가 산업화 시대의 항산인 부동산과 과거시대 일자리에 몰두 하고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 20세기 초 농경 시대의 항산인 토지 대신 신기술을 받아들였던 공순이 공돌이들이 한국 산업화를 일궈냈다. 아파트를 팔라고 윽박지를 때가 아니다. 버블의 방향을 4차 산업으로 확실히 틀어야 한다. 인공지능 공순이 공돌이들이 뛴다면 부동산 버블은 자연스럽게 4차 산업으로 옮겨간다. 이들 중 누군가가 한국에서 인공지능, 로봇 시대를 연다면 한국도 무항산 카르페 디엠의 나라가 된다. 경자년 오늘, 무엇을 시작해야 할지 반문한다. 10년 후 무항산 카르페 디엠인가? 아니면 프레카리아트가 될 것인가? 2020년 새해는 그 시작의 첫발자국이어야 하겠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