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 후 서울에 있다 잠잠해지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려 했는데 1․4후퇴 때 기차를 타고 대전에 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네요."

북한 실향민인 지정석(73) 대전 중구 발전협의회 회장은 고향을 떠나 68년간 대전에서 살아온 토박이다.

지정석(73) 대전 중구 발전협의회 회장은 1.4후퇴때 대전으로 피난내려와 70년가까이 대전에 살아온 토박이다. 사진=정민혜 기자 jmh@cctoday.co.kr
지정석(73) 대전 중구 발전협의회 회장은 1.4후퇴때 대전으로 피난내려와 70년가까이 대전에 살아온 토박이다. 사진=정민혜 기자 jmh@cctoday.co.kr

격동의 시기이던 1947년 서울에서 언론에 종사하던 그의 아버지는 남북관계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북에 있는 가족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태어난 지 불과 1년도 되지 않았던 지 회장과 그의 어머니는 편지를 받고 곧장 남쪽으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이것이 고향과 영영 이별이 될 줄은 몰랐다.

어렸을 적 떠나와 기억은 거의 없지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그를 통일운동으로 이끌었고, 40년째 이어가고 있다.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도 11기부터 19기까지 15년째 활동 중이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지 회장은 2011년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훈 받았다.

지 회장은 남북통일이 실현되려면 무엇보다 ‘남남(南南)갈등’ 해소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는 통일의 당위성, 통일방식 등을 두고 서로 의견이 엇갈린다”며 “우리끼리도 국론통일이 안 되는 상황에서 북한과 통일을 얘기하자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원도심 토박이인 지 회장은 ‘문창동 오토바이 특화거리’를 일궈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1980년대 초 친구 권유로 오토바이 부품 가게를 운영하게 된 그는 관련 업소들이 서비스마인드, 사업에 대한 계획성 등이 무질서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후 서울 중구 퇴계로, 대구 중구 인교동처럼 대전에도 오토바이거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 회장의 노력 끝에 공업사, 수리점, 대리점, 부품가게 등 오토바이 관련 업소 40여 곳이 문창동에 모여 영업을 시작했고 문전성시를 이뤘다.

오토바이 산업 침체로 현재 남은 업소는 10곳에 불과하지만 여전히 이곳은 대전의 상징처럼 기억된다.

그는 도시개발을 이유로 점점 사라지는 원도심 근대건축물에 대한 아쉬움도 토로했다.

실제 지 회장은 대흥동 대전여중 뒷골목에 외국문화원이나 예술단체들이 상주하는 문화예술거리를 만들자고 제안했지만 보존은커녕 원룸촌이 되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대전은 ‘교통의 도시’로 불리는 만큼 이전 복원된 뾰족집을 방치하지 말고 옛 사진을 진열하는 등 관광지로 꾸며놓으면 좋을 것 같다는 게 지 회장의 생각이다.

지 회장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근대문화와 현대문화가 상생할 수 있는 문화도시를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민혜 기자 jmh@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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