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설 속 중고거래도 활발

대전 서구에 사는 주부 박모(54) 씨는 지난달 23일 새해 달력을 받으러 은행 2~3군데를 들렀지만 모두 허탕을 쳤다. 주거래은행에서는 이미 지난해 12월 초 달력이 다 떨어져 구할 수 없었다. 평소 이용하지 않던 신용금고 등에선 '실물 통장이 있어야 한다'거나 '사전에 문자를 받은 고객만 준다'고 전했다. 박 씨는 "은행 달력을 걸어두면 돈이 들어온다고 소릴 들었다"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달력을 구하려고 은행을 돌아다녔지만 구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집에 걸어 놓으면 돈이 들어온다’ 속설에 은행 달력이 해마다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물론 은행 달력 얘기는 속설에 불과하지만 그만큼 팍팍한 가계 사정을 반영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현재 은행이 매 연말 고객에게 나눠주는 달력은 중고나라나 당근마켓 등 온라인 중고장터에서는 웃돈을 주고 거래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중고거래 플랫폼 '중고나라'가 지난해 12월 한 달간 신한·KB국민·우리·KEB하나·NH농협은행 등 국내 시중은행 5곳에서 제작한 달력에 대한 중고 거래 건수를 집계한 결과 모두 840건으로 나타났다.

거래가 가장 많았던 은행 달력은 우리은행으로 264건을 차지했다. KB국민은행은 192건, NH농협은행은 164건, 신한은행 117건, KEB하나은행 103건순이었다.

동구에서 자영업을 하고 있는 이 모(52) 씨는 "은행 달력 걸어두면 돈이 들어온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중고장터를 통해 구입했다"며 "VIP 고객용 달력이 더 좋을 것 같아 웃돈을 1만원이나 더 줬다"고 말했다.

특히 몇 년 전부터 은행 달력은 '걸어 놓으면 부자 된다'는 속설까지 나돌면서 몸값이 더 높아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연말·연초가 되면 은행은 달력 받으려는 손님으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일부 은행은 선착순제로 혹은 신분증과 통장 원본을 내야 주는 등 그 나름의 규정까지 두고 있다.

은행에서 배포하는 달력 수량 자체가 많지 않아 전국 각 지점에서 달력을 구하려면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한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지역 은행원 류모(38) 씨는 "지점별로 고객 수에 맞혀 수량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배포 기준을 정해놓는다"라며 "무작정 창구로 와서 달력을 달라고 하는 고객 때문에 승강이가 벌어지기도 한다"고 전했다.

은행 달력이라고 해서 다 같은 취급을 받는 것은 아니다.

달력 시세는 은행 브랜드별로 차이는 없었지만 고객 등급별로는 두 배 정도 차이가 났다.

VIP 고객용 벽걸이 달력은 1만원, 일반 고객용은 5000원 등에 거래된다.

지역 은행 한 관계자는 "과거보다 전반적으로 달력 수요가 줄어 은행에서도 비용절감을 위해 제작 규모를 줄이다 보니 시중에서 쉽게 구하기 어렵다"면서 "매년 11월 중에 각 지역 영업점에 배부되지만 12월에 초에 모자랄 정도로 다 소진된다"고 말했다.

이심건 기자 beotkkot@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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