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영동군 선정한 ‘여민동락’
2개월뒤 대전 대덕구·청주시 사용
행정편의주의 지적…“진정성 의심”

[충청투데이 배은식 기자]  전국 각 지방자치단체가 경자년(庚子年) 새해를 맞아 새로운 각오와 역할을 다짐하는 신년 사자성어를 발표하면서, 여타 자치단체가 선점한 것을 그대로 사용해 '베끼기' 논란이 일고 있다.

 이미 다른 자치단체가 발표한 사실을 사전에 몰랐거나 우연히 겹쳤다고 볼 수도 있지만, 도·시·군·구정을 운영할 새로운 목표와 실천의지를 표명하는 핵심 화두를 선정하는 과정이 치밀하지 못했다는 비판은 불가피해 보인다.

 충북 영동군은 지난해 11월 2020년 신년 사자성어로 '백성과 더불어 즐거움을 함께 한다'는 뜻의 '여민동락(與民同樂)'을 선정·발표했다. 박세복 영동군수는 지난해 11월 26일 제276회 영동군의회 정례회에서 시정연설을 통해 "여민동락의 자세로 온 군민이 힘을 합쳐, 꿈과 희망이 넘치는 행복한 영동을 만들자"며 신년 핵심화두로 '여민동락'을 제안했다. 박 군수는 또 지난달 18일 영동와인터널 이벤트홀에서 열린 체육인의 밤 행사에서도 "내년에도 온 군민이 힘을 합쳐 꿈과 희망이 넘치는 행복한 영동을 만들어가자는 '여민동락'의 자세로 지역과 생활체육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자"고 선언했다.

 이처럼 영동군이 새해를 앞둔 2개월여 전부터 2020년 사자성어로 선택한 '여민동락'을 최근 청주시와 대전 대덕구도 잇따라 선정해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라는 지적을 낳고 있다.

 이에 대해 청주시는 협치와 포용이라는 시정가치를 잘 담아내면서 민선7기 시정운영의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연속성을 고려했으며, 알아듣기 쉽고 읽기 쉬운 기존 성어 가운데 큰 의미가 담겨있는 단어를 골랐다고 설명했다.

 대전시 대덕구 역시 올해 구정(區政) 철학을 담은 신년 사자성어로 '여민동락'을 공직자들의 공모와 투표를 통해 선정했다고 밝혔지만, 인근 자치단체에서 이미 2개월 여 전에 선정했다는 점에서 진정성에 의문부호가 제기되고 있다.

 때문에 도·시·군·구정 철학과 정통성을 대내외에 표방하면서 인근 자치단체에서 선언한 것을 그대로 베껴 쓰는 것처럼 인상을 풍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높다.

 새해를 맞아 자치단체마다 표방하는 구호나 정책이 상이하고, 저마다 특성과 환경이 다른데 똑같은 메시지를 발표하는 것은 주민체감도를 떨어뜨리고, 실천의지도 미약하게 비쳐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에 기인한다.

 차모(53·청주시 흥덕구 사창동) 씨는 "일정 기간 공모를 통해 선정했다고 하지만 인근 자치단체에 대한 모니터링도 하지 않고 핵심 화두를 선정하는 것은 행정편의주의 발상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며 "좋은 뜻의 사자성어를 공통으로 쓴다고 해서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1년간 사용할 핵심 키워드를 철저한 검증도 없이 선택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영동=배은식 기자 dkekal23@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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