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희 강동대학교 교수

최근 우리 사회의 새로운 화두가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다. 4차 산업혁명은 스위스 다보스의 세계경제포럼에서 처음 언급된 개념이다. 4차 산업혁명은 2016년 1월 제46회 다보스 세계경제 포럼에서 처음 언급된 이후 2017년 1월 17일부터 4일간 개최됐던 제47차 포럼의 주제가 되면서 세계의 이목을 받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 국가와 기업 그리고 학자들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인문학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4차 산업혁명이 인간과 사회 그리고 인문학에 끼칠 영향에 대해 진단하느라 바쁘다.

18세기 후반 영국을 중심으로 1차 산업혁명은 초기 자동화를 이루고 증기기관차의 발명으로 다리와 철도가 건설돼 산업운송의 혁명이었다면 20세기 초반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2차 산업혁명은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한 자동화이며 노동부문에서 좀 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연결성을 이뤘다. 1970년대 독일과 일본을 중심으로 일어난 3차 산업혁명은 디지털시대로 컴퓨터, 로봇, 정보통신 등으로 좀 더 정교한 자동화,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자연 사이의 연결성을 증진시켰다.

4차 산업혁명은 자동화와 연결성이 극대화되는 변화를 의미하며, 극단적인 자동화로 저급수준의 기술은 물론 중급수준의 숙련기술도 자동화하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을 갖춘 극단적인 자동화는 인간만이 지녔던 기술 중 일부를 자동화했다. 특히 언어와 이미지를 포함하는 빅데이터를 분석하고, 처리하는 부분은 컴퓨터에 의해 대체될 것으로 전망했다. 극단적인 연결성은 국제적,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해 거의 실시간 인터넷 통신망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됐다. 이제 인류는 데이터 분석을 통해 일정한 패턴으로 파악한 결과를 토대로 인간의 미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을 논의하면서도 막상 중요한 점 하나를 간과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에서 이야기하는 과학기술의 극대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문학 특히 문학이 바탕이 돼야한다. 4차 산업혁명이 궁극적으로 인간을 위한 것일진대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이나 반성 없이 이뤄진 산업혁명은 의미가 없다. 문학은 현란한 영상 이미지가 아니라 활자를 매체로 하는 책에 기반을 둔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흰 종이 위에 찍힌 검은 글자를 읽는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책을 읽으며 우리는 그 동안 잊어온 자신을 되돌아보고 무엇보다도 꿈을 꾼다.

요즘 젊은이들이 책을 멀리하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같은 디지털 기기에 탐닉해 있는 현실을 우려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 있다. 인문학 특히 문학이 바탕이 없는 4차 산업혁명은 모래 위에 쌓은 성처럼 쉽게 무너져 내릴지 모른다. 따라서 기술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의 4차 산업혁명이 이뤄질 수 있도록 문화콘텐츠와 창의력의 원천인 문학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미래사회의 문화자원을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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