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의 충청 역사유람>
<59> 忠州 탄금대와 신립장군
남한강 대표 절경… ‘명승’ 42호로
임진왜란… 조령 대신 탄금대 선택
왜군 기세에 와르르… 강물에 투신
선조 “신립마저 무너졌느냐” 당황
아픔 간직한 탄금대엔 찬바람 휭…

▲ 충주 탄금대는 남한강을 대표하는 절경 중의 절경이지만, 뼈아픈 역사가 녹아 있다. 사진은 탄금대 전경. 충주시 제공
▲ 탄금정. 충주시 제공
▲ 문경 조령 제3관문. 문화재청 제공
▲ 탄금대에 있는 신립 장군 순절비 및 비각. 문화재청 제공
▲ 문경 조령 제1관문. 문화재청 제공
▲ 1920년대 계선대와 탄금대 모습. 충주시 제공
▲ 경기 광주에 있는 신립 장군 묘. 문화재청 제공

[충청투데이] 충주 탄금대는 남한강을 대표하는 절경 중의 절경으로 '명승' 42호로 지정됐다.

그러나 이처럼 아름다운 탄금대에는 뼈아픈 역사가 녹아 있다. 때는 1592년 임진왜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4월 부산에 상륙한 일본군은 거침없이 서울을 향해 진격해 왔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선조임금은 이일을 순변사로 하여 왜군을 격퇴하도록 했으나 오히려 상주 전투에서 패배하고 조령(鳥嶺)으로 퇴각했다.

조령은 경상북도 문경과 충청북도 괴산군이 경계를 이루고 있는 해발 642m의 험준한 고개. 그래서 이 고개는 하늘을 나는 새만 넘나들 수 있다는 뜻으로 '새재'라 불렀다. 이렇게 험준한 고개이지만 당시 부산, 대구, 안동 경상도 지방에서 서울을 가려면 꼭 거쳐야하는 주요 통로였다. 이 때문에 왜군이 틀림없이 이 고개를 넘어 충주를 거쳐 한양으로 진격할 것이니 이곳에서 적을 물리치자는 것이 상주전투에서 패배한 이일 장군의 주장이었다.

이 때 북상하는 왜군을 물리치기 위해 8000의 군사와 함께 4월 24일 현지에 도착한 신립 장군은 참모들과 전략회의를 가졌다.

이일 장군 뿐 아니라 신립장군의 종사관 김여물까지도 조령에서 싸울 것을 주장했으나 신립 장군은 '우리는 기병이 우세하니 평야가 있는 탄금대에서 싸우자'고 했다. 신립은 임금으로 부터 '삼도도순변사'라는 전투의 총책임자로 임명되었기 때문에 그의 주장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신립 장군은 탄금대에 배수진을 치고 병력을 배치했다. 그는 휘하의 기병을 굳게 믿고 있었다. 고니시가 이끄는 왜군은 신립장군을 두려워했으나 4월 27일 별 저항 없이 그 험한 조령을 넘었다. 그런데도 신립은 적의 동향파악을 위해 내보낸 척후병이 돌아오지 않아 이와 같은 적의 상황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적의 상황을 모르니 작전도 세울 수가 없었다.

조령을 넘은 고니시 부대는 세 방향으로 나누어 선발대는 재빠르게 충주성에 돌입했고 또 한 부대는 충주 달천강변으로 그리고 나머지 부대는 달천 우측을 돌아 신립장군의 조선군을 완전 포위했다. 그렇게 조령을 왜군에 내어 준 것이 엄청난 작전의 차질을 가져 왔다.

신립 장군은 말을 달려 충주성으로 갔으나 이미 왜군에 포위된 것을 알고 진영으로 되돌아 왔다. 그리고 삼면으로 완전 포위되어 새로 나온 무기 조총을 쏘며 달려드는 왜군을 향해 결사적으로 항전했다.

하지만 여기서 또 하나의 예상이 빗나갔다 신립이 믿었던 기병이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4월 하순은 겨울에 얼었던 논밭이 풀려 땅이 질척거려 말이 달리는데 지장을 준 것.

그러니 기병들이 제대로 싸울 수가 없었다. 이런 악조건 속에 결사적으로 왜군을 무찔렀으나 시간이 갈수록 우리 피해는 더 싸울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왜군은 조총에 불을 뿜으며 점점 포위망을 좁혀 왔고 탄금대를 배수진으로 친 신립장군의 작전은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더 이상 어찌할 수가 없구나…' 장군은 최후의 결심을 하고 탄금대에 몸을 던졌다. 자결을 한 것이다. 종사관 김여물도 뒤를 따라 강물에 몸을 던졌다. 구차하게 잡혀 치욕을 당하느니 깨끗이 목숨을 던진 것이다.

"신립마저 무너졌느냐?"

선조임금은 탄금대 전황을 보고 받고 몹시 당황했다. 그리고 서둘러 몽진(피난)길에 나섰다. 그렇게 탄금대전투는 임진왜란의 국면을 결정적으로 바꿔놓은 것이 됐다. 기막힌 아픔을 간직한 탄금대, 그 아름다운 절벽에는 물새들이 겨울 찬바람을 가르며 하늘 높이 나른다. <충남복지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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