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단추 꿴 김종갑, 기강 세운 채명신… 논산에 떴던 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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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단추 꿴 김종갑, 기강 세운 채명신… 논산에 떴던 별들
  • 충청투데이
  • 승인 2019년 12월 26일 16시 43분
  • 지면게재일 2019년 12월 27일 금요일
  •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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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평섭의 충청역사유람] 59 논산훈련소의 별들
초대 소장 김종갑, 훈련소 창설 작업 강행군…
만주군 출신 양국진, 군복 벗고 비리로 구속
채명신 두 번 근무… 참모장때 비리 척결 유명
北에서 귀순한 정봉욱 등 거쳐간 사연 수두룩
‘돈산’이라 불릴만큼 논산지역경제에 큰 기여
▲ 1976년 사격술 예비훈련 모습. 육군훈련소 제공
▲ 1950년대 육군 제2 훈련소 정문. 육군훈련소 제공
▲ 육군훈련소 요즘 모습. 육군훈련소 제공
▲ 육군훈련소 요즘 모습. 육군훈련소 제공
▲ 육군훈련소 입영행사 장면. 육군훈련소 제공

육군 제2 훈련소라는 이름으로 1951년 출범을 한 논산훈련소(현 육군훈련소)의 초대 소장은 김종갑. 그는 충남 서천 출신으로 일제하에서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를 나와 일본 육군 예비사관학교를 다녔다.

해방이 되자 귀국하며 군사영어학교를 졸업, 1946년 육군 소위로 임관됐고 6·25전쟁 때 9사단장 등 일선 지휘관으로 전공을 세웠다. 그러다 1951년 11월 제2 훈련소가 창설되자 초대 소장으로 임명됐다. 훈련장부터 취사장 건설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각종 교육프로그램 등 초창기 훈련소 창설 작업은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는 강행군이었다.

이와 같은 공로로 김종갑은 1956년 육군 중장으로 승진하면서 예편했고 그해 바로 국방부 차관이 됐다. 5·16 후 박정희 대통령의 공화당에 입당, 고향 서천에서 6대 국회의원에 출마해 당선됐다. 군인에서 정치인으로의 변신이었다. 국회에서는 국방위원장까지 역임하는 등 승승장구했으나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낙선의 고배를 마셨고 더 이상 정치인으로 재기하지 못하다 1996년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다음 훈련소장으로 널려 알려진 인물은 양국진(楊國鎭) 장군. 그는 일제 때 만주군 중위로 있다가 해방이 되자 국군의 전신인 경비대에 투신해 장교로 복무했다.

특히 그가 훈련소장으로 있을 때 비리 사건이 많이 발생했고 육군 중장으로까지 승진했으나 뒷말이 무성했다. 1959년 군복을 벗었고 다음 해 결국 비리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그러나 며칠 뒤 4·19혁명이 일어나자 석방됐다. 하지만 5·16이 발생하자 계엄군에 의해 구속됐고 혁명재판에까지 회부됐으나 이번에도 얼마 안 가 풀려났다. 구속-석방-구속-석방의 희한한 운명이 되풀이된 것이다. 그는 1981년 64세에 세상을 떠났다.

채명신 장군은 논산훈련소에서 두 번 근무한 경력을 지니고 있다. 한 번은 대령 계급으로 참모장을 했고, 장군으로 승진하고서 훈련소장으로 다시 부임한 것이다.

참모장일 때 일화가 있다. 훈련소 고급 장교들이 미국에서 보내온 장병들 내복을 가로챈 사건이 그것이다. 이 비리에 관련된 장교들이 미국에서 도착한 내복으로 바꿔치기해 훈련병들에게 지급한 것이 채명신 참모장에 의해 적발된 것. 채명신은 관련자를 엄하게 조치하고 자신도 도의적 책임을 짓는 뜻으로 영창에 넣어달라고 하는 바람에 주위에서 당황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일화를 들려준 K(예비역 대령)는 “그렇게 해 훈련소에 비리가 척결되고 기강이 세워지는 큰 전기가 됐다”고 회고했다.

그는 육군 소장이 돼 다시 논산훈련소에 부임했는데 그가 부임하자 훈련소 전체가 긴장했다고 한다. 채명신은 5·16 때 박정희를 지지했으나 유신체제 반대를 함으로써 대장 승진은 이루지 못하고 주월 사령관을 끝으로 평생을 바쳐온 군 생활을 마감했다. 그리고 전문 분야도 아닌 외교관으로 스웨덴, 그리스, 브라질 대사를 역임하다 2013년 11월 25일 88세를 일기로 운명했다.

특히 그는 죽어서도 장군 묘역에 안장하는 것을 거부하고 화장해 사병묘역에 잠들어 큰 감동을 줬다.

북한군으로 있다가 대대 병력을 이끌고 대한민국에 귀순해 장군까지 승진했던 정봉욱 소장 등등…. 우리 논산훈련소를 거쳐 간 별들의 사연이 참 많다. 그리고 그들이 땀 흘려 이룩한 터전에서 오늘도 우리의 역사는 흐른다.

덧붙여 논산훈련소 때문에 논산은 '논산'이 아니라 '돈산'이라 할 만큼 지역경제에 크게 기여했다. <충남복지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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