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기적과 희망은 절절한 바람과 노력으로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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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기적과 희망은 절절한 바람과 노력으로 이뤄진다
  • 충청투데이
  • 승인 2019년 12월 19일 18시 52분
  • 지면게재일 2019년 12월 20일 금요일
  •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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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수 충북도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처장

다사다난했던 2019년이 저물어간다. 눈을 감고 한해를 돌아본다. 개인적으로도 수많은 과정이 스쳐 지나간다. 어깨가 아파지기 시작하면서 술 한잔할 때도 팔을 머리에 치켜올리고 마셔야 했다. 고통이 사그라질 무렵 통나무 쌓아놓은 곳에서 내려오다 발이 찌그러져 인대가 파열됐다. 반백 년 이상 살아오면서 처음 발목 깁스를 했다. 전문 등반에 심취해 수 없이 떨어져 봤지만 깁스를 한 적은 없었다. 엉뚱하게도 평범한 곳에서 사고가 나 삶을 돌아보게 됐다.

그런 와중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내암리에서 자연학습 중 학생이 실종돼 수색을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충북산악구조대에 긴급공지를 했다. 충청권에서 활동하는 대원 30여명이 현장을 찾아 정밀수색에 들어갔다, 장마철 굵은 빗방울이 수색을 방해했다. 주말 수색을 마무리하고 다음 주 전국 구조대원을 소집해 수색 방향을 더 넓게 잡으려던 계획은 실종 열하루 만에 조은누리 양이 기적적으로 우리 곁으로 돌아와 마무리됐다.

그와 동시에 네팔에서는 10년 전 직지원정대가 등반했던 길목에서 시신을 발견했다며 몇 장의 사진을 보내왔다. 근데 사진을 아무리 봐도 한 명만 보인다. 네팔로 긴급수색 비용을 보냈다. 하루하루가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2009년 마지막 무선을 한곳이 5400m 지점인데 발견된 곳은 5000m 아래 두 명이 함께 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리고 8월 3일 밤 두 대원의 사진과 함께 시신을 수습해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에 안치했다는 소식을 받았다. 헬기로 포카라 병원까지 이동시키라 하고 현지로 갔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안치실에서 10년 만에 다시 만났다. 그저 만난 기쁨에, 서로를 확인해야 하는 과정에, 우리가 기억보다는 많이 변한 모습에 당황했지만 차분히 하나하나 일을 해결했다. 10년 만에 모국으로 돌아온 두 대원은 청주고인쇄박물관 근처 '직지원정대원 추모의 비'에서 동료산악인 및 청주시민과 인사한 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2009년 히운출리 북벽에 직지루트를 개척하기 위해 떠났던 직지원정대는 10년간 빙하 속에서 자일로 서로를 연결한 채 나란히 누워 있었던 민준영 박종성 대원이 돌아오면서 등반을 마무리했다. 쇼설미디어태희가 주최한 '직지의 별 추모콘서트'에는 800여명의 관객이 아픔을 희망으로 함께 승화시켜 주었다. '산은 그들을 품었고, 그들은 우리를 품었다' 주제로 진행된 추모 콘서트는 모두에게 잔잔한 심금을 울리며 관객의 호평 속에 마무리했다.

'가을 숲길에 물들다'란 주제로 진행된 속리산둘레길 걷기축제에는 1000여명의 시민들이 함께했다. 사람이 단풍인지 단풍이 사람인지 착각이 들 정도의 울긋불긋한 행렬이 말티재를 수놓았다. 지역을 찾아가며 진행한 지역사회 거버넌스 구축에 관한 토론회는 언론의 주목과 정책 반영에 호평을 받았다. 우울하게 시작된 한해가 주위 분들과 도민, 국민의 관심 속에 잘 마무리됐으니 '최고의 한해'를 보냈음이 틀림없다. 기적과 희망은 그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절절한 바람과 노력으로 이뤄진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한해였다. "난 행복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