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태 대전 서구청장

스위스 글라루스는 인구 4만명의 작은 도시다. 해마다 4월이면 2만여명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 알프스의 나라답게 아름다운 관광 상품도 유명하지만, 글라루스에 관광객이 몰리는 이유는 따로 있다. ‘란츠게마인데(Landsgemeinde)’라고 불리는 주민총회 때문이다. 란츠게마인데는 800년 역사를 자랑한다.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 대중교통 요금을 의결하고 예산안도 심의한다. 지방자치단체장도 뽑는다. 직접민주주의의 현장이 관광 상품이 된 것이다.

직접민주주의는 고대 그리스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다. 직접민주주의는 주민의 의견을 가장 잘 모을 수 있는 이상적인 제도다. 하지만 인구가 증가하고, 도시가 커지고, 사회가 다변화하면서 모든 주민이 한자리에 모여 중대사를 결정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가 간접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이유다. 우리나라 역시 선거로 뽑힌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회 의원에게 결정권을 위임하는 간접민주주의를 시행하고 있다. 지방자치는 간접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우리의 지방자치는 민주주의 역사와 그 궤적을 같이 한다. 지방자치법은 1949년에 제정됐다. 그러나 6·25, 5·16 등 현대사의 질곡에 묻혀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했다.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이후 비로소 지방자치법이 부활하고, 1995년 6월 27일 지방선거가 처음 치러졌다.

우리는 짧은 기간 고도성장을 통해 지금의 경제 발전을 이뤄냈다. 지방자치 역시 마찬가지다. 외형적인 성장은 이뤘지만, 실질적인 내용이 미흡했던 게 사실이다. 제왕적 중앙집권, 중앙과 지방의 불균형, 마을 공동체 파괴 등 여러 문제점과 부작용을 낳았고 실질적인 지방자치의 꽃은 피우지 못했다. 다행스럽게도 이러한 문제점을 직시한 정부는 2018년 10월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1987년 지방자치법이 부활한 지 30여년 만의 일이다.

지난 8월 서구 갈마1동에서는 주민자치회 마을총회가 열렸다. 마을총회에서는 분과별 안건에 대해 주민이 직접 의제를 발표하고, 주민들의 질의 답변에 이어 직접 투표로 사업 우선순위를 정했다. 주민자치회가 확대, 정착하기까지는 아직 제도적, 재정적 지원 등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갈마1동의 마을총회는 진정한 풀뿌리 주민자치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시금석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주민이 주인인 주민자치’는 현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자치분권의 핵심가치이다. 최종 목표는 주민의 삶의 질 향상과 공동체 가치 회복이다. 진정한 민주주의와 주민주권을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은 풀뿌리 주민자치라고 믿는다.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빨리 가는 것보다 함께 준비하고 합의하는 과정에 충실해야 주민자치가 뿌리를 내릴 수 있다. 서구의 한 동네에서 시작한 작은 시도가 자치분권을 통한 주민자치의 마중물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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