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국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박일환 교수

▲ 박일환 교수
▲ 박일환 교수

[충청투데이 이재범 기자] 영국 속담에 ‘주신은 군신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인다’는 말이 있다.

지나친 음주가 가져올 수 있는 해로움을 일컫는 말이다. 알코올은 세포막을 투과해 흡수가 잘 되므로 신체의 각 부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알코올은 그 자체나 대사산물인 아세트알데하이드라는 물질이 갖는 독성과 알코올의 내성 및 의존성이 문제가 된다.

내성은 많은 양의 술을 오랫동안 마시게 되면 알코올을 처리하는 대사능력이 커져서 상당한 양의 술도 거뜬히 처리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의존성은 알코올 금단증상과 관련된 것으로 술을 줄이거나 끊으면 특이한 증상을 경험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외래에서 만난 적이 있는 어떤 환자에 대한 기억이 난다. 이 환자는 음주로 인해 몸이 여위고 병약해 보였다.

그런데 환자는 “자신은 한 말의 술을 지고 갈 수는 없으나 먹고 갈 수는 있다”고 장담을 하는 것이었다. 술에 대한 내성을 잘 표현하고 있는 예다. 술을 과음하거나 폭음하는 분들은 나름대로의 이유를 갖고 있다. 사회적으로 음주를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매일 술을 마셔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많다. 또 술은 마취약과 같아서 마시면 모든 것으로 잊어버릴 수 있게 되어 마신다고도 한다. 어떤 분들은 술은 수면제와 같아서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자지 못한다고 말한다. 술을 진통제처럼 드시는 분도 있어서 술을 한 잔 해야 어려운 노동일을 감당할 수 있다고들 한다. 다른 어떤 분들은 술을 음식처럼 마신다.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르다는 신호를 느끼면 곧 음주를 한다. 어떤 분들은 술은 약주와 같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의학적으로도 적절한 음주는 건강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말 그대로 약주가 된다. 하루에 1~2잔 정도의 음주하는 분들은 전혀 음주하지 않는 분들에 비해 더 오래 살고, 심장혈관 질환의 위험성도 낮출 수 있다고 한다.

알코올 남용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은 다양하다. 알코올 남용과 관련해 가장 관심이 많은 것은 간질환이다. 단순히 지방간에서부터 알코올성 간경변증 및 간암까지 알코올성 간질환은 그 범위가 넓다. 알코올 남용이 신체에 미칠 수 있는 또 다른 영향은 위장관 계통의 이상이다. 알코올에 직접 노출되는 구강, 식도, 목 안의 점막 손상이 일어날 수 있다. 점막이 손상되고 영양상태가 나쁘면 설염이나 구내염이 흔히 생긴다. 뿐만 아니라 치아 소실, 잇몸 질환, 충치가 많이 발생한다. 알코올 섭취는 위액의 역류를 막는 하부 식도 괄약근의 운동을 억제해 역류성 식도질환을 일으킬 수도 있다. 위염이나 십이지장염을 흔히 앓게 되고 췌장염도 흔하다. 알코올 남용은 암성질환과도 관련이 있으며 구강암, 후두암, 식도암, 대장암, 유방암의 위험성을 증가시킨다. 또 중추신경계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신경계의 변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 과음은 뇌졸중의 위험성을 증가시키고 기억장애를 유발하며, 말초신경장애로 감각의 이상을 불러올 수도 있다. 이외에도 심장의 이상을 초래할 수도 있는데 고혈압이나 급사, 심부정맥의 위험성이 커지며 심장근육의 손상으로 인해 심부전이 생길 수도 있다. 과음은 당뇨의 발생 위험을 높이며, 혈청 내에 중성지방의 수준을 높이기도 한다. 아울러 호르몬 분비 기능의 이상으로 정자생성이 감소하기도 한다. 술 습관에 문제가 있는 환자들이 처음부터 알코올 남용을 하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사회적 음주로 즐기면서 가끔씩 마시던 음주가 점점 양이 많아지고 횟수가 증가하게 되어 필름이 끊기는 일이 증가하고 가족들이나 친구들과의 관계가 어려워진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면 자신의 술 습관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자신감을 상실해 간다.

술을 얼마나 마셔야 과음인가 혹은 폭음인가 하는 것은 문화적으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우리나라 소주를 기준으로 하면 일주일에 2병 이상을 마시면 과음이 된다. 또는 한자리에서 1병 정도를 마시면 폭음이다. 노인이나 여성에서는 기준이 더 낮아서 일주일에 7 표준 음주량, 1회 최대 음주량 3잔 이상이면 문제 음주가 된다. 문제 음주를 선별하기 위한 많은 설문도구가 개발돼 있다. 설문의 내용은 응답하기에 간단하기 때문에 결과를 바로 알 수 있다. 문제 음주의 선별을 위한 가장 간단한 네 가지 질문은 합당한 이유 없이 술을 끊으려고 해본 적이 있었는지,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신의 음주에 대해 비난받은 적이 있었는지, 자신의 음주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 적이 있었는지, 아침에 숙취로 해장술을 마신 적이 있었는지 이런 질문에 대해 하나라도 “예”라고 대답한다면 자신의 음주 습관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술이 주는 유익은 분명히 있다. 즐거움을 주기도 하고, 사회적 관계를 원만하게 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건강을 해칠 정도로 위험한 수준의 음주는 반드시 피해야 할 것이다. 알코올 남용을 벗어나기 위한 가장 기본적 방법은 자신이 실천할 수 있는 음주의 한계를 정하고 지키려고 해 보는 것이다. 어떤 분에게는 이런 한계가 건강에 해롭지 않은 수준의 음주가 되겠고, 또 다른 분에게는 완전 금주이기도 하다. 즉 첫 잔을 마시지 않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좋은 술 습관은 적절한 양을 마시는 것이다. 술의 종류보다 술 속에 포함되어 있는 알코올의 양이 중요하다. 술을 얼마나 빨리 마시는가도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한 번에 소주 반병에서 한 병을 넘기지 않고 마시는 것이 좋고, 술을 마신 다음에는 3일간 금주하는 것이 좋다. 기분이 좋지 않거나 화가 날 때에 술을 마시는 것은 폭음의 위험성이 있어 좋지 않다. 술만 마시기보다 좋은 음식과 함께 먹는 것이 중요하며 이렇게 함으로써 알코올이 희석되어 흡수가 천천히 이뤄질 수 있고 영양을 유지할 수 있다. 단국대병원 가정의학과 박일환 교수는 “알코올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큰 잔보다는 작은 잔으로 되도록 천천히 즐기면서 마시는 것이 좋다”며 “원샷이나 폭탄주, 술잔 돌리기와 같은 좋지 않은 과거의 습관를 버리고 올바른 술자리 문화를 형성해 건전하고 유쾌한 송년회를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전했다. 천안=이재범 기자 news7804@cctoday.co.kr

도움말 = 단국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박일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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