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구 청주시 오창읍 산단관리과장

한글의 기원과 발명에 대해서는 여러 기록과 다양한 주장이 있다. 옛 글자를 모방해 세종대왕이 친제했다는 정인지의 '훈민정음' 해례의 서문이 있고, 신미대사의 도움으로 창제됐다는 얘기에, 고대 인도나 중세 몽골 등의 문자나 체계를 기초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현재까지 가장 유력한 설에 의하면 대왕이 친히 공주와 왕자 그리고 집현전의 일부 학사들과 함께 비밀리에 창제했다고 본다. 한글이 유수한 언어학자들이 격찬하고 감탄해 마지않는 과학적인 소리글자인 것을 보면 관련 기록과 함께 많은 이야기가 전해지는 게 무리는 아닌 듯하다.

1443년에 창제되고 1446년에 반포한 훈민정음은 '예의'와 '해례'로 구성돼 있으며, 각기 서문과 본문이 실려 있다. '예의'의 서문은 대왕이 직접 지은 것으로, 정음을 창제한 목적과 28자를 만들었음을 말하고 있다. 첫머리의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는 반포 후 펴낸 훈민정음 언해본에 나온다. '해례'의 서문에 의하면 정음은 삼극(천지인)의 모양과 음양의 원리를 더한 까닭으로 세상의 소리를 다 글로 옮길 수 있다고 적고 있다. 예의의 본문에는 음가(성음 현상), 운용법 등에 대해 간략히 나오고, 해례의 본문에는 제자의 원리와 기준, 자모음 체계, 음상, 용례 등이 기술돼 있다.

20세기 초까지 훈민정음의 앞부분인 '예의'만 전해져왔으며, 뒷부분인 '해례'까지 갖춘 정본은 1940년이 돼서야 비로소 문화재 수집가인 간송 선생이 구입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훈민정음해례본'이라 함은 곧 이 정본을 말함이다. 간송은 당시 기와집 10채 값(1만 원)을 주고 이를 어렵게 구했다고 전해진다.

선생이 구입한 해례본 외에 10여 년 전 훈민정음 상주본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뒤 문화계가 분분하다.

무엇보다 이 서책의 소지자가 원하는 보상가가 천문학적이어서 반환을 바라는 문화재청 관계자는 물론 한글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어찌해야 할까. 인터넷상으로 본 상주본은 보관 중 화재로 인해 일부 훼손되고 전체적으로도 상태가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자택에서 개인이 아무리 귀히 여기며 보존과 간수에 힘쓴다 한들 분명 한계가 있다. 해례본 못지않게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구한말 헐값에 프랑스로 팔려 간 청주의 직지(하권)는 국립 미테랑 도서관에서 국보급의 대접을 받고 있음에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해 청주시민을 비롯한 한국민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이러한 사례를 십분 참작했으면 좋겠다.

차라리 이참에 세기적 문화재를 소장한 특별한 인연을 가진 사람으로, 저렴한 비용이나 무상으로 정부에 대여해 철저한 보존과 학술적 연구의 길을 열어놓는다면 무척이나 보람 있지 않을까. 국내 유명 변호사 등의 도움을 받아 이에 관한 일을 진행한다면 소장자나 정부 모두에 도움이 되면 됐지 손해 볼 일은 없을 듯하다. 현 보관자의 현명한 판단과 행보를 기대해본다.

또한 언젠가 청주시에서 멋지게 재건한 대왕 초정 행궁에 훈민정음 상주 해례본, 간송 해례본, 그리고 언해본이 함께 나란히 전시되기를 소망한다. 그날이 오면 천상에서 세종대왕의 웃음소리 널리 울려 퍼지고 지상에서는 청주시민과 더불어 만인이 손뼉 치며 기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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