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정보 유통이 미미하던 시절 남베트남을 월남(越南), 북쪽은 월맹(越盟)으로 불렀다. 1960년대 인기를 끌었던 대중가요에서 ‘남남쪽 섬의 나라 월남의 달밤…’이라는 가사로 매우 잘못된 정보를 유포시켰는데(그 뒤 슬며시 ‘남남쪽 머나먼 나라 월남의…’로 고쳤다) 베트남 성씨(姓氏) 가운데 가장 많은 응우옌(Nguyen)은 구엔으로 발음했다. 구엔 반 티우 당시 월남대통령, 구엔 카오 키 수상 등은 전혀 다른 이름으로 동맹국 한국에 알려진 셈이다. 이런 오해와 장벽은 1975년 베트남 통일 이후 십 수 년 간의 공백을 거쳐 우리와 수교하면서 대부분 사라졌다. 젊은 층이 두터운 1억에 가까운 인구, 높은 교육열, 뛰어난 손재주와 경로사상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미 45년 전에 통일을 이뤘고 연 3모작이 가능한 농업기반 등 부러운 여건은 한둘이 아니다. 확연한 국력 차이에도 불구하고 오랜 전쟁 끝에 미국이 철수해버린 유일한 국가로서 국민 자부심 또한 대단하다. 일본과 막히고 중국과의 불균형이 심화되는 이즈음 이미 상당부분 진척된 한-베트남 교류와 협력 그리고 호혜 평등의 동반자 관계는 더욱 심화가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 순풍을 가속화시키는 박항서 감독<사진> 같은 분의 존재는 그래서 대단히 위력적이다. 2002년 네덜란드인 거스 히딩크 감독이 우리에게 준 감동 그에 못지않은 열광과 우정을 선사하고 있다고 베트남 교민들은 입을 모은다.
지금 베트남의 박항서 열풍은 단순한 스포츠 분야 성과에 그치지 않는다. 그로 인한 유·무형의 이득과 민간외교 성과는 예상을 뛰어넘는다. 언젠가는 박항서 감독도 베트남을 떠날 것이고 또 다른 인물이 새로운 스타덤에 오르겠지만 이제는 간헐적인 일회성을 벗어나 보다 지속적인 스포츠 외교를 통한 국제협력을 심화시킬 때에 이르렀는데 어쩌다 출현한 스포츠 영웅을 기다리며 거기에 의존할 수만은 없지 않을까. 승리에 환호하는 베트남인들의 손에 들린 태극기, 그 값진 가치를 이제 전 세계로 더 널리 확산시키는 국가, 사회차원의 제도적 시스템이 필요한 때에 이르렀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