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문화 신문>

시간의 빠름을 잊고 있다가 달력 한 장 달랑 남은 연말이 되는 요즈음 그 속도를 실감하게 되는 것 같다.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살아내다가 결국 시간의 아쉬움을 또다시 반성하듯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겨울 초입의 그 황량한 거리에 나서게 되면 누구나 낯설고 갈길 없는 사람들이 된다. 물론 날카롭게 파고드는 한기 때문이긴 하겠지만. 이럴 땐 왠지 따스한 게 그리워진다. 잔뜩 후끈해진 거실의 훈훈함이 발걸음을 당기고, 뜨거운 김을 연신 후후 뿜어내는 설렁탕 국물이 입맛을 당긴다.

사실 나는 그보다 어린 시절 늘 따스했고 달콤했던 부모님 품속의 아늑한 기억이 가슴을 당긴다. 이제 늙은 어미가 된 나에게도 부모님은 항상 그러한 존재이다. 그들이 궁극적인 마음의 안식처가 되는 까닭을 돌이켜보면, 당신들의 삶보다는 자식의 삶에 더 무게중심을 두고 자식이 가장 편하게 딛고 올라갈 수 있도록 늘 자신을 낮췄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부모님들께 어떻게 그 고마움을 표현할 것인가? 이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자식이면서 부모인 내가 생각하는 ‘효’는 나 또한 내 부모 못지않은 떳떳한 부모가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내 아이들이 그들의 인생에서 갈길 없이 헤매거나 찬바람에 힘없이 쓰러지려 할 때 언제든지 안기고 든든하게 버텨주는 부모, 그런 어른이 되는 것이 이게 진정한 효도일 것이다. 그러한 넉넉한 마음과 따스한 온기를 갖는 부모가 되는 건 부모라는 이름을 지녔던 지난 세대에게 효가 될 것이고, 그러한 마음이 우리 자식들에게 끊이지 않게 이어지도록 하는 게 진정한 이 시대의 효가 아닐까?

'어른이 된다는 것'은 부모의 품을 벗어나 독립된 객체로 당당한 사회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부모의 그늘에 벗어나 각자 삶의 빛을 찾아간다는 것이다. 자식을 키우면서 가장 가슴 아픈 일은 그들이 부모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의 가치를 높게 생각하지 못할 때이고 자신의 빛을 잃어버린 채 어둠 속에서 헤맬 때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우리 자식들은 그 존재만으로 부모의 희망이고,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미래이기에 그들이 어떤 시린 역경에도 따스한 미소를 짓도록 그들에게 우리는 안락한 거실이, 얼큰한 국물이, 포근한 부모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어찌 보면 이 시대 정말 자연스럽고 가치 있는 효도일 것이다.

조수자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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