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봉 시인·효문화신문 명예기자

은비녀 꽂으시고 하늘색 치마저고리를 즐겨 입으셨던 엄마 생각이 절로 나는 오늘이다. 천사 같았던 엄마였기에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도 아주 편안히 눈을 감으셨던 것 같다.

언제 들어도 다정다감한 느낌을 주는 말이다. '엄마'라는 말. 나는 지금도 산소에 가면 '어머니'보다 '엄마'라고 부른다. 1912년생이니까 지금 생존해 계시다면 만108세이다.

생전 엄마의 몸에서는 특유의 냄새가 났다. 세상의 어떤 냄새보다도 향기로운 엄마 냄새, 그것은 땀 냄새였다. 농촌 생활에서 얻어진 향기. 논일을 하시면서 밴 특유의 땀 냄새였다.

4년 터울로 사내자식만 다섯을 낳으신 엄마였다. 내가 넷째인데 딸 노릇을 해드렸던 것이 뿌듯함으로 남는다. 코흘리개 넷째 아들을 방안에 가둬놓고(?) 논일을 나가셨던 엄마, 간식 때에 들어와 젖 한 모금 빨리고, 다시 점심때 들어와 젖 한 모금 빨리면서 키웠노라고 회고하시던 엄마의 몸에서는 세상 향보다도 좋은 땀 냄새가 났다. 그 땀 냄새를 맡으며 나는 잠이 들었고…. 엄마의 몸에서는 땀 냄새만이 아니었다. 어떤 때는 오이 냄새, 어떤 때는 옥수수 냄새도 났다. 벼 냄새, 콩 냄새, 풀 냄새, 수초 냄새 짙은 논길을 거닐면서 몸에 밴 냄새들, 그 냄새는 하루 종일 맡아도 좋았다.

엄마가 마실 가실 때면 엄마의 치마꼬리를 붙잡고 쫓아다녔다. 쫓아가는 길도, 돌아오는 길도 행복했다. 엄마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진 양말 기우시며 긴 밤을 지새울 때 난 그 앞에서 콜콜 잠을 잤다. 오형제 배 곯을까 치마끈 졸라매고 논일 하시느라 허리 굽는 줄도 모르셨다. 팔십 평생 가시밭길 걸으면서도 한 백 년 사실 줄 알았는데 가시는 날은 정말 편히 눈을 감으셨다.

청승맞은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날이었다. 고향집 안방이었다. 늘 바쁜 엄마가 모처럼 안방에 누워 낮잠을 주무셨다. 나도 그 곁에 누워 단잠을 잤다. 엄마 곁이 그렇게 안온하고 평화로웠다는 걸 안 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 비가 오시는 덕분에 한많은 시름을 잠시 풀어놓고 고단한 몸을 쉴 수 있었던 엄마였다. 노후엔 민요가락을 즐겨 부르셨다. '노들강변 봄버들'을 즐겨 부르셨다. 절망의 바다를 힘겹게 노 저어 가며 토해내는 한숨 소리였던가. 어머니는 자식 입에 먹을 것이 들어가고 나서야 비로소 배가 부르다 하셨다.

아! 엄마 몸에서 나던 땀 냄새를 맡고 싶다. 아련히 흘러간 세월, 그 세월 속에 엄마 몸에서 나던 땀 냄새도 아련해졌다. 오늘 가요무대에서 어떤 가수가 부르는 '어머니'란 노래가 내 눈시울을 적셨다. '어머님, 오늘 하루를 어떻게 지내셨어요… 손발이 금이 가고 잔주름이 굵어지신 어머님… 오래오래 사세요. 편히 한 번 모시리다', '동지섣달 긴 긴 밤이 짧기만 한 것은 근심으로 지새우는 어머님 마음'이고, '길고 긴 여름날이 짧기만 한 것은 언제나 분주한 어머님 마음'이란 '모정의 세월'도 내 가슴을 후린다. 이런 노래들이 내 가슴에 파도 되어 나를 아주아주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해주었다.

엄마는 나의 거울이었다. 내가 나를 볼 때마다 엄마를 통해 볼 때 내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천사 같았던 엄마를 통해 바라보는 나, 그런데 나는 천사는 그만두고 일사도 아니 되니 어찌하랴. 남에게 손가락질 한 번 받지 않았던 엄마가 남겨주신 유훈을 갈고 닦을 일이다. 다른 이들의 삶을 존중하고, 아름다운 사람들과의 만남을 어떠한 일보다도 우선으로 여기며 그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도록 하겠다. 마음속에 좋은 생각이 가득한 사람은 좋은 말을 하고, 좋은 것을 주며, 좋은 삶을 산다. 내 엄마가 그러하셨듯이.

내 엄마는 눈발 속에 서 있는 한 그루 푸른 소나무처럼 내 가슴속에 떠오르는 아스라한 한 장의 수채화다. 세월이 가도 식지 않는 사랑을 내게 주신 분이다. 사람은 아픔과 실패를 안고 끊임없이 전진함으로써 좋아진다 하지 않는가. 그런 삶을 살고 싶은 것이다. 엄마의 몸에서 나던 '땀 냄새'를 생각하면서. 오늘 밤 짧게 머물렀다 떠나신 엄마별이 더욱 반짝반짝 빛을 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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