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희 ㈜대원 전무이사(수필가)

가을비가 온종일 추적거린다. 단풍이 들지 않은 푸나무도 보이는데 겨울의 문턱이란다. 내리는 비가 정녕 겨울로 인도하는 비인가. 아직 내 마음에서 가을을 보내지 않았는데, 계절은 무엇이 급한지 겨울로 달려가고 있다. 주위에서 겨울 채비를 하느라 분주하다. 비 때문에 이래저래 인간의 마음만 뒤숭숭하다. 순간 '비도 상처를 입힌다'라는 말에 온갖 상념에서 깨어난다. 그 말이 얼어붙은 사유에 비수를 꽂는다.

비가 상처를 준다는 말이 아이러니하다. 인간은 오늘 내린 비가 메마른 땅을 해갈하는 단비라고 부른다.

그 단비는 처마 밑 자갈돌을 무심히 부딪는다. 곧은 빗살로 인정사정없이 한 곳을 파고든다. 빗살은 공중에서 떨어지며 상처를 예감한다. 빗줄기가 누군가에게 고통을 준다는 걸 알고 있다. 낙숫물 소리를 즐기던 감상주의자는 이제야 비의 실체를 확인한다. 보통의 단어로 알고 지냈던 비의 모습이 아니다.

극락보전을 서성이다 빗살의 현장을 목도한다. 빗살은 땅에 떨어져 흔적을 고스란히 남긴다. 빗줄기는 누군가의 등을 두드리고 살점을 도려내며 서서히 스며든다. 오죽하면, 인간은 땅이 움푹 파이는 걸 대비하여 빗살이 닿는 지점에 자갈을 깔아 놓았으랴. 어디 그뿐인가. 찬비를 피하지 않는 사람도 위험하다. 대부분 빗살을 피하고자 하늘을 향하여 보란 듯 우산을 펼친다. 우산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사람은 빗물을 고스란히 맞아야만 한다.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무른다면, 온몸을 적시고 추위에 떨리라. 그러다 빗살이 비수가 되어 동사로 세상을 등질지도 모른다. 우주 만물은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인가. 가는 빗살은 누군가에게 크고 작은 생채기와 흔적을 남기고 사라진다.

빗살도 태양의 빛살처럼 이중성을 지닌다. 빗물은 대지에 상처도 주지만, 대지가 품은 풀꽃들에 생명수가 되기도 한다. 오늘만큼은 법당 앞 기와로 꾸민 아귀밥통도 행복하리라.

늘 허기가 진 아귀도 배가 부를 정도로 밥통에 빗물이 고인다. 아귀(餓鬼)는 생전에 탐욕과 질투가 많아 아귀도(餓鬼道)에 이른 죽은 사람의 영혼이다. 목구멍이 바늘구멍 같아 음식을 삼킬 수 없어 늘 굶주리며 음식물을 구한다. 어찌하여 음식을 먹으려면 불이 되어 목으로 넘기지를 못한다. 그런데도 먹을 것 앞에선 서로 먹으려고 다투고 싸워 '아귀다툼'을 부른다. 아귀가 오직 먹을 수 있는 건 부처님 전에 올린 청정수란다. 부디 낙숫물로 그의 허기를 달래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귀다툼을 벌이는 족속이 어디 아귀뿐이랴.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난투극을 벌이거나 분노를 밥 먹듯 표출하는 사람이다. 인정이 없이 모질고 쌀쌀한, 말 그대로 말살(抹殺)의 행위이다. 마음의 허기를 채우고자 벌인 생각 없는 행위들이 아귀의 모습과 무엇이 다르랴. 말살 속에는 빗살처럼 생명의 기운이 없다. 말과 행동에서 알게 모르게 살(殺)이 돋은 적이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생명수가 된 단비가 숭고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문득 나도 빗살처럼 누군가의 상처를 딛고 서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이런 내 마음을 다독이듯 단비가 내린다. 그대 마음의 허기도 달래주길 두 손 모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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