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호 청주시 우암동 행정복지센터 주민복지팀장

입동이 지나고 한층 싸늘해진 속에 지난 계절 전해진 서울 새터민 모자의 사망사건이 떠올라 마음이 아프다.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았다는 것과 한번 탈락한 국가지원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일 것"이라며 사망 이유를 추측하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은 적이 있다.

이러한 것들도 원인이 될 수 있을 테지만 더 큰 이유는 새터민에 대한 우리들의 시각과 편견이 그들을 사각지대로 몰았기 때문은 아닐까. 어느 한 사람만의, 어느 한 부서만의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청각장애인 부부가 세 살 아들을 키우는 모습을 담은 논픽션물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한 적 있다. 무언가 취약한 이들을 그저 모든 것이 취약한 대상으로 일반화해 버리는 우(愚)를 범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청각장애인은 듣지 못하므로 사원으로 쓰지 못할 것이라는 막연한 거부감으로 일자리를 얻기 어려웠지만 축산업을 하시는 사장님의 배려로 수년째 손발을 척척 맞춰가며 일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세 살 아들이 소리에 익숙해지도록 아주 오래된 휴대용 녹음기를 들고 산으로 들로 다니며 소리를 녹음하고, 우리들에겐 무척이나 간단하고 쉬운 '사랑한다'라는 말 한마디를 위해 수화통역센터 직원, 주변 상인, 축사 주인 등을 찾아다니며 녹음해 아들에게 들려주는 아빠의 마음을 마음으로 느끼는 아들은 작은 얼굴에 큰 미소로 답을 한다.

아마 녹음할 수 있게 해달라는 아빠의 손길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기꺼이 목소리를 녹음해준 사람도 있겠지만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거부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내민 작은 손길이 누군가에겐 커다란 행복으로 다가올 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황이었다.

뜨거운 하늘 아래 임신한 아내와 남편이 서로 양산을 씌워주겠다며 큰길에서 벌이는 조용한 다툼은 달달함으로 나의 마음을 적셨다.

서로를 위한 배려와 관심이 허물어져 가고 희미해져 가는 사회안전망을 공고히 할 것이고 사각지대가 되려 하는 틈바구니는 사랑과 관심의 볼트와 너트로 꼭꼭 죄어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작은 행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비싸고 커다란 파이프 오르간도 아닌 작고 값싼 녹음기의 '사랑한다'라는 말 한마디는 1000개, 1만 개의 바람개비가 돼 울린다. 눈을 감아도 보이는 소리, 귀를 막아도 들리는 소리, 입을 막아도 나는 마음의 소리를 느낄 수 있도록 내 마음, 우리 마음의 진동수에 무딘 사람이 아닌 예민한 한 사람이 되어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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