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 대전시 성인지정책담당관

올해 3분기 합계출산율이 0.88%라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린다. 워라밸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일터에서 기업에서, 가정에서 만족할 만한 해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2019년 통계에 따르면 육아 때문에 직장을 사직한 여성들이 64만 9000명에 이른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느라 ‘시간제 일자리’를 선택해야만 하는 여성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은 합계출산율 저하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일과 생활의 균형이나 경력단절을 이야기 할 때 여성의 입장과 남성의 입장은 고려해야 할 문제가 다르다. 경제활동의 중단 사유가 남성들은 본인이 아프거나 개인 일신상의 문제인 경우가 많지만, 여성들은 가족돌봄과 연관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82년생 김지영이 많은 여성들에게 공감을 사고 있고 이를 기회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여성들이 늘고 있지만, 결혼과 출산 연령이 늦어지면서 ‘30대 김지영’이 ‘40대 김지영’으로 옮아가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워라밸은 일과 가정, 여가생활이 균형있게 이뤄지고 있는지, 그리해 일상에서 행복감을 누리고 있는지를 통합적 관점에서 살펴봐야 하는 주제이다. 워라밸이 이뤄지면 행복지수도 높아지게 되므로 워라밸은 개인의 삶의 질과 직결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누군가의 돌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존재이다. 태어나서 성장하며 삶을 유지하다 생을 마감하는 전 과정이 ‘돌봄’과 연결돼 있다. 그러나 우리사회의 돌봄노동은 아직도 여성에게 집중돼 있다. 요양보호사, 가정관리사, 아이돌보미 등 돌봄의 제도화로 인해 비공식적, 사적영역에서 이뤄지던 많은 일들이 공적인 영역에서 이뤄지고 있지만 돌봄노동에 대한 가치평가는 매우 낮다. 장기요양 종사자의 여성비율이 95%인 현실은 돌봄의 젠더불평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먹고 입고 생산을 위한 휴식을 제공하는 집안에서의 소소한 일들은 생존을 위한 기본노동으로, 누구나 살아가기 위해 해야만 하는 일상 노동이다. 생존을 위한 평범한 일상 노동은 성별에 상관없이 이뤄져야 한다. 점점 맞벌이를 해야 가정생활이 가능해지는 사회에서 돌봄의 남성참여는 권장돼야 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문화로 자리매김 돼야 한다. 몇 년 전 육아휴직 후 복직해서 밀린 업무를 처리하다 과로로 순직한 어느 여성사무관의 죽음은 남의 집 일이 아니다. 일터와 쉼터를 오가지 못하고, 일터와 일터를 오가는 여성이 많은 우리사회의 노동현실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직 일상에서의 워라밸, 성평등 문화는 갈 길이 멀다. 고용과 지위상승, 권위와 권력을 획득해가는 과정에서의 기회확대 등 성평등 전략은 나름 성과있게 진행되고 있지만, 삶의 양태를 규정하는 문화의 변화는 아직도 지체되고 있다. 여성의 사회참여는 이뤄졌지만 남성들의 돌봄참여가 이뤄지지 않고, 일상에서의 성평등 문화 확산이 더딘 것은 워라밸 실현을 저해하는 요소임에 틀림이 없다. 육아 등 돌봄에 대한 남성들 개인의 인식과 태도가 중요하다. 남성도 여성이 겪는 육아와 모성으로 인한 죄의식, 스트레스, 자기분열, 커리어 포기 등 여성들이 겪는 경험을 겪어봐야 변화의 속도가 빨라질 것이다.

워라밸은 돌봄을 양질의 보편적 서비스로 제공하는 ‘돌봄의 공공성’이 확대돼야 하고 근무시간의 단축, 가족친화정책·모성보호·사회보장정책 등 일과 가정의 양립을 지원하는 다양한 제도적 뒷받침이 마련돼야 실현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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