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농협 청주교육원 교수

김치는 우리의 음식 문화를 상징한다. 식사하면서 항상 먹는 대표적인 반찬이다.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을 만큼 그 종류도 많고, 김치를 활용한 요리도 굉장히 다양하다. 김치가 없으면 어딘가 허전하고 해외 나가면 더욱 그리운 메뉴이기도 하다. 김치는 스페인의 올리브유, 그리스의 요구르트, 인도의 렌틸 콩, 일본의 낫토와 더불어 미국의 건강 전문지 ‘헬스’가 선정한 세계 5대 건강식품으로 선정될 정도로 몸에 좋은 음식으로 평가받고 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집집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온 가족이 모여 김장을 한다. 김장은 춥고 긴 겨울을 나기 위한 큰 연례행사였다. 배추를 직접 구입해 소금물에 절이고 다시 씻어서 물을 빼고, 재료를 다듬는 등 힘든 작업이지만 김장하는 날은 이웃끼리 '김장품앗이'를 하고, 온 동네가 잔칫날 같았다.

김장은 음식을 함께 만드는 과정일 뿐 아니라 서로 소통하고 정을 나누려는 공동체 정신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정신은 농촌의 옛 문화인 품앗이, 두레 등과 같은 상부상조하는 문화와 연결된다. 오랫동안 뿌리 내렸던 농촌의 공동체적 삶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전통이다.

또 김치는 우리 민족의 특성을 보여준다. 김치를 만들 때 쓰이는 재료들은 모두 독특한 맛을 내는 개성이 강한 특징이 있다. 배추, 무를 제외하고 고춧가루, 마늘, 생강, 젓갈 등은 맵고, 짜고, 쓰고 해서 날 것으로 먹기에는 부담스러운 재료들이다. 하지만 김장 양념으로 한데 섞여 버무려지고 발효되면 신기하게도 깊은 맛을 만들어 낸다. 재료가 어우러져 조화와 상생의 맛을 내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의 개성이 비교적 뚜렷하고 자존심도 강한 민족이다. 쉽게 타협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어떤 계기를 만나면 놀라울 정도로 단결하고 대단한 힘을 발휘한다. 함께 어려움과 난관을 극복하는 모습을 통해 충분히 증명하고 있다.

이러한 가족과 이웃이 서로 정을 나누는 '김장문화'는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세계인이 보존해야 할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김치 담그기는 2017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될 정도로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전통 문화로 높이 평가되는 소중한 가치를 갖고 있다.

최근 사회 변화만큼 김장 풍습도 변화되고 있다. 김칫독에 담아 땅 속 깊이 묻는 대신 김치냉장고에 보관하고, 배추를 직접 소금에 절이는 대신 절임 배추를 구입하는 등 보다 쉽고 편하게 하려 한다. 그리고 가족과 이웃들이 함께 모여 김장을 담그는 풍경을 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식생활이 서구화되고 소규모 가정이 증가하면서 김치 소비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또한 비용 부담과 더불어 이웃과의 낯설은 관계 속에 많은 시간과 노동력이 필요한 김장 대신 포장 김치 구매가 오히려 저렴해 포기하는 가정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김장하는 풍습이 사라지면서 나눔과 협동의 문화까지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염려와 아쉬움이 남는다. 겨울이 깊어지기 전에 온가족이 함께 둘러 앉아 김장을 담그며 옛 추억을 나누는 시간을 가져 보면 어떨까? 자녀들에게도 색다른 체험이 될 수 있다. 김장 속을 채우며 서로의 마음을 채우고, 이웃과 김치 한포기를 나누며 따뜻한 온정도 함께 나누는 훈훈한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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