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카드로 정기국회가 올스톱되면서 민생 법안은 물론 내년도 정부예산안마저 헌법에 명시된 처리 시한(12월 2일)을 넘겼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어제 "국회 스스로 헌법을 어기고 있다는 뼈아픈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며 고개를 숙였다. 정부예산안이 법정처리시한을 넘긴 것은 연속 5년째다. 여야 간 경색으로 교섭단체 3당 원내대표 회동이 이뤄지지 않는 등 여야 협의 채널이 모두 중단된 상황이다.

정부예산안은 1일 0시를 기해 자동으로 국회 본회의에 부의된 상태다. 여야 간 정쟁으로 예산안이 제때 처리되지 않을 경우 초래될 국회 권위 실추는 물론 국정 혼란을 막기 위해서다. 2014년 발의된 국회선진화법은 예산안과 예산부수법안이 11월 30일까지 끝나지 않으면 다음날 자동으로 '정부 원안'이 본회의에 부의된 것으로 본다. 본회의에 정부 원안을 상정해서 그대로 통과시킬 수도 있지만 그래선 안 된다.

최선책은 여야 합의로 내년 예산안을 정기국회 회기 내(10일) 통과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과 한국당은 어제도 민생입법·예산안의 처리 불발과 관련해 서로 '네탓 공방'만 했다. 민주당은 한국당이 예산심사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입장인 반면 한국당은 예산안을 정치공세의 수단으로 삼는다고 맞서고 있다. 그러면서도 서로 대화와 협상의 창구는 봉쇄돼 있다. 예산안이 본회의로 넘어온 이상 예산심사 권한도 예결위에서 교섭단체 원내대표에게로 이관된 형국이다.

예산안 처리를 위해서라도 여야 원내대표단이 서로 만나서 경색된 정국을 풀어가는 것이 순리다. 지난해의 경우는 법정 처리시한을 엿새 초과한 8일 새벽 겨우 처리해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 최장 지각 처리라는 지탄을 받았다. 그 당시는 민주당과 한국당 거대 양당만의 합의처리로 그밖의 야3당 패싱 논란을 촉발시켰다. 올해는 이와 반대로 한국당을 제외한 그밖의 야당과 공조해 예산안과 민생법안을 처리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모름지기 명분과 실리에 맞는 정치행위여야 국민의 지지를 받는다. 더 이상 극한의 야야 격돌은 국민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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