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철 대덕대학교 교수

올해로 우리 큰 놈은 4수째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는 공부를 곧잘 했는데, 고 2때 전교 학생회장을 맡으면서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해 첫해 수능에서 크게 실패했다. 자존심이 강한 큰 놈은 첫해 대학을 아무곳에도 지원하지 않았고 재수를 선택했다. 그해 또 수능성적에 만족하지 못한 놈은 또 막무가내로 무조건 3수를 하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필자와 집사람은 결사반대했지만 큰 놈은 끝끝내 고집을 꺾지 않았다. 필자는 큰 놈 몰래 대전의 국립대인 A대학 M과에 등록을 해 놓았다. 만약 큰 놈이 3수에서 실패해도 어딘가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일단 등록을 해 놓았다.

3수를 할 때는 그래도 약간의 비젼이 보였다. 모의수능을 보면 다 맞거나 많이 틀려야 한 두개 정도였다. 그렇게 일년여를 큰 놈은 열심히 달렸다. 그렇지만 정작 본 게임인 수능때는 또 망해버렸다. 물론 재수할 때보다는 성적이 좋게 나왔지만 큰 놈 성에는 차지 않는 성적이 나왔다. 큰 놈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거실에 퍼질러 앉아 대성통곡을 해댔다. 조용히 큰 놈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이제 그만하자. 그동안 수고했다" 큰 놈은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가고 싶어 했고 실제로 서울의 중하위권에 있는 K, B 대학에 원서를 넣어 합격을 했다. 그러나 집사람과 필자는 반대했다. 서울로 가겠다는 큰 놈을 설득했다. "사실은 대전의 국립대인 A대학에 아빠가 작년에 등록을 해놓고 휴학 처리를 해 놓았단다. 서울 중위권 대학이나 대전의 국립대인 A대학이나 거기서 거긴데 학비 싸고 하숙비 들지 않는 집 앞 A대학이 아빠는 백번 낫다고 생각한다." 집사람과 필자의 집요한 설득에 놈은 대전의 A대학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나 학교를 다닌 지 두어 달이 지났을 때쯤 어느날 큰놈이 술에 잔뜩 취해서 집에 들어왔다.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던 내 앞에 큰놈이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엄마와 아빠 말을 들어 어지간하면 A대학을 다니려고 했지만, 저는 도저히 A대학은 다니지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자퇴를 해버렸습니다" 하고 말했다. 만취한 큰 놈을 잡고 노발대발 해댔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렇게 A대학을 자퇴한 다음날 큰 놈은 이발소에 가서 삭발을 하고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4수에 들어갔다. 그 후로는 지금까지 6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큰 놈과 필자는 말도 거의 섞지 않았다. 그런 큰 놈이 드디어 수능을 치러간다기에 필자는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일어나서는 아파트 현관 앞에 차를 대고 기다렸다. 잠시 후 가방을 챙겨서 아파트 현관을 내려오는 큰 놈에게 실로 몇 달만에 말을 꺼냈다. "아빠가 오늘은 데려다 주마!" 큰 놈은 말없이 옆좌석에 올라앉았다. 그리고는 수능 시험장까지 아무말도 하지 않고 태워다 주었다. 수능시험장에 도착해 큰 놈이 차에서 내릴 때 딱 한마디만 해주었다. "수능 잘 봐라!" 내리는 큰 놈의 뒤통수가 쓸쓸해 보였다.

우리집 작은놈 말에 따르면 이제는 형에게서는 수능 장인의 기품이 엿보인단다. 형은 뭔가 모르지만 옆에서 보면 수능에 관한한 득도한 것 같이 보인단다. 그러면서 하는말이 "형이 오늘 두루마기를 입고 수능시험장에 가야 형의 수능장인의 기품이 더 돋보일텐데!"라며 지 엄마한테 엊저녁에 이야기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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