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친구 구하라를 떠나 보내며…어려서 여린 청춘들

사진 = 아이클릭아트 제공

☞'아프니까 청춘이다'란 말은 틀렸다. 아프면 어찌 청춘인가. 이 말은 참 잔인하다. 무조건적인 '인내'를 강요한다. 젊으니 괜찮다고 말한다. 조금만 참으라고 한다. 아니다. 아프면 참지 않아야 한다.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게 맞다. 도움을 요청하는 게 맞다. 청춘이면 오히려 더 아프다. 어려서 여리다. 버틸 힘이 없다. 쌓아 온 세월도 가볍다. 그래서 딛고 일어나기가 버겁다. 세상이 추워 푸르지 못하다. 봄이 오지 못한다. 얼음 속에선 새순이 돋지 못한다. '청춘(靑春)'이 오지 못한다.

☞청춘들이 스러진다. 청춘의 사망 원인 1위는 암이 아니다. '2018년 사망원인 통계'를 보면 나온다. 10~30대 사망원인 1순위는 자살이다. 청년 우울증도 자꾸만 증가한다. 충격적이다. 그런데 그만큼 청년들이 힘들다. 청년 인생은 관문의 연속이다. 학업을 넘으면 취업이 나온다. 취업을 해도 결혼은 어렵다. 주위를 둘러보면 다들 바쁘다. 다들 힘들다. 남을 봐줄 시간조차 없다. 나를 잡아주지 못한다. 돈만 있으면 될 거 같지만, 꼭 그렇진 않다. 연예인들을 보면 안다. 자꾸 별들이 진다.

☞추억의 친구를 또 잃었다. '카라' 구하라가 지난 24일 세상을 떠났다. 대학시절, 그녀의 노래·춤을 따라 했다. 그만큼 예뻤다. 그런데 이젠 다신 볼 수 없다. 설리가 떠난 지 겨우 한 달이 지났을 뿐이다. '절친' 설리가 떠났을 때, 그 몫까지 살아보겠다던 그녀였다.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힘들었나 보다. 생각해보면, 그녀는 철저한 피해자였다. 악플러는 그녀를 작아지게 했다. 사랑했던 애인은 그녀를 비참하게 했다. 이런 일들에 담담하기엔 그녀도 어렸다. 웃으면서 울고 있었다.

☞베르테르 효과가 걱정된다. 안 그래도 힘든데 슬픈 뉴스뿐이다. 자꾸 우울해진다. 그렇다고 이상한 게 아니다. 죄가 아니다. 누구나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우린 그런 감정을 숨기라 배웠다. 그래서 문제다. 우리 사회는 감정 표현에 인색하다. 우울하면 털어놓아야 한다. 참으면 안 된다. 진료가 필요하면 받아야 한다. 부끄러운 게 아니다. 달라질 수 있다. 혼자인 거 같지만, 다 같이 힘들다. 나보다 나을 게 없다. 그러니 괜찮다. 자신을 괴롭히지 않아도 된다. 우린 아직 봄을 맞지 못했다. 아프기만 했다. 그게 아까워서라도 나아가야 한다. 작은 꽃이라도 피워야 한다. 아니, 피울 수 있다.

편집부 김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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