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각 대전시건축사회장

아침 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기온 덕분에 검정 롱코트에 회색머플러로 한껏 멋을 내어보며 늦가을을 즐겨본다. 숨가빴던 2019년도 이제는 슬슬 정리해야 하는 시점임을 느끼게 된다. 한 해를 정리해야 하는 이 시점에 건축계는 '건축사 의무가입제'의 부활에 모든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지난 2000년 정부는 자유로운 시장경쟁과 건축설계 분야 경쟁력 제고를 명분으로 건축사사무소 등록갱신 폐지, 건축사협회 가입 임의화 등 건축사 관련 각종 규제 폐지 및 완화조치를 시행했다. 하지만 지난 19년동안 건축사협회에 가입한 건축사는 약 71%로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지지 못하고 오히려 건축사 면허 대여 및 차용, 덤핑수주 등 비정상적인 운영행태가 난무해 공공의 안전에도 위협을 가하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건축사협회는 의무가입을 지킨 타 전문자격 단체에 비해서 기능이 축소되고 약화돼 스스로 자정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기가 힘든 상태이다.

지난 5월, 국회의원 회관에서 열린 '건축물 안전 위협하는 자격대여 근절과 건축사 사회적 책임 강화 방안 토론회'에서 발제자였던 이명식 동국대 건축학과 교수는 위와 같은 문제해결을 위해 건축사들의 대한건축사협회 가입을 의무화함으로써 협회의 공적 기능을 강화하고 협회가 징계권한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와 더불어 석정훈 대한건축사협회 회장은 1만 6000명의 건축사를 실질적으로 관리하면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건축사의 조사나 징계에 한계를 느끼고 있고, 협회에 가입하지 않은 비회원이 4000~5000여명에 달해 실제 징계사유에 해당하더라도 제명하거나 불이익의 정도가 미약해 징계의 효용성이 떨어져 결국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한다고 설명했다. 원영섭 대한변호사협회 변호사는 현재의 의무가입제는 '악인이 승리하는 제도'라고 비판하며 더 이상 방치하면 모든 건축사들이 공멸한다는 인식이 팽배해지고 있으므로 반드시 법정 의무단체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축사는 다른 전문직과 마찬가지로 공공성을 지닌 중요한 국가공인 자격자이며, 건축사협회는 이런 국가공인 자격자들이 제대로 된 공적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단체이다. 이 공적인 역할은 자신들의 이익보다 더 앞선 목표로서 의무적으로 가입한 협회를 통해 체계적으로 관리와 교육 등이 이루어져야 가능한 것이다.

의무가입 제도에 대한 정당성과 필요성이 더욱 제기되는 이 때에 국가가 공공적인 의무만 강화하지 말고 권리와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데 힘을 실어주길 바랄뿐이다. 삶을 살아가면서 겪은 우여곡절은 지나고 나면 현재의 삶을 이루는 약이었다고 느껴지곤 했다. 임의가입으로 흐트러졌던 건축사의 위상과 공공성의 회복을 꿈꾸며 내일의 약이 되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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