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우 YTN 충청본부장

'분홍 물결'. 영어로 'Pink tide'다. 'turn to the left(좌익화)'라고도 한다. 신자유주의 경제 모델에서 벗어난 남미 민주주의 국가들이 좌익 정부로 전환하는 경향을 묘사하는 용어다. 남미에서 온건 좌파 정부가 도미노 현상처럼 들어서는 정치적 상황을 일컫는다.

이 용어 최초 사용자는 뉴욕타임스 남미지국장 래리 로터. 그는 2004년 우루과이 대통령 당선자 바스케스를 '붉은(red) 물결'이 아닌 '분홍(pink) 물결'로 표현했다. 바스케스가 우루과이 역사상 최초 좌파 대통령이기 때문. 그가 왜 좌파 대통령에 대해 'red' 대신 'pink'로 표현했을까. 전자는 공산주의와 관련됐지만 후자는 온건한 사회주의를 가리킨다는 점이 그 이유다. 남미에서 최초 온건 사회주의 국가는 1999년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 정부. 분홍 물결이란 용어가 만들어지기 전 차베스 정부는 이미 좌파 정부였다. 1999년부터 2014년까지 남미 12개국 중 10개국이 좌파 정부였다.

분홍 물결은 오래가지 않았다. 국가가 아닌 대중이 주체가 되고, 국가보다 사회를 우선하는 분홍 물결은 선심성 복지, 포퓰리즘 등으로 좌초하기 시작했다. 2013년 차베스 사망과 2016년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분홍 물결은 썰물이 됐다. 브라질에 이어 아르헨티나, 칠레 등에서 우파 정권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최근 '남미에서 가장 성공적인 사회주의 지도자'라 불리는 볼리비아 모랄레스 대통령이 14년의 권좌에서 강제로 물러났다. 그는 2006년 분홍 물결의 결실인 남미연합(Unasur·12개국)결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썰물이 된 분홍이 다시 밀물이 될 조짐을 보인다. 좌파였던 룰라 전 브라질 대통령이 석방 후 정치 활동에 들어갔고, 최근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좌파 페르난데스가 집권했다. 칠레의 우파 정권도 최대 위기를 맞으며 좌파 정권을 잉태하고 있다. 우루과이 역식 좌파 정권 출범이 유력시된다. 과연 남미의 분홍 물결이 부활할 것인가.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