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엔디컷 우송대학교 총장

11월도 일주일이면 12월에게 자리를 내줘야 한다. 나뭇잎의 화려한 색은 찬바람에 어느새 바랬고 나무들은 조금씩 맨몸을 드러낸다. 시인들은 가을과 겨울의 사이를 쇠락과 고독의 시기로 노래하곤 한다. 올해의 일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 11월 필자도 모르게 가장 설레면서 지낸다는 걸 깨달았다. 11월에는 한국의 추석과 비슷한 추수감사절이 있기 때문이다. 매년 추수감사절이면 흩어졌던 가족들이 모여 한해를 마무리한다. 한국에서 지내는 필자에게는 조금 어려운 일이지만 이번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애틀랜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11월을 보내고 있다.

얼마 전 우송대와 프랑스 리옹에 있는 폴 보퀴즈 조리대학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복수학위 프로그램 입학식에 참석했다. 함께 했던 폴 보퀴즈 관계자에게 페이스트리 만드는 걸 배우고 싶다고 했더니 흔쾌히 좋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가족들에게 따끈하고 바삭한 페이스트리를 먹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크리스마스 시즌이 기다려진다. 미국에서는 11월 추수감사절부터 12월 크리스마스까지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날씨가 추워지면 따뜻하고 행복한 기억들이 떠오르곤 한다.

한국에도 '저녁이 있는 삶'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으로 안다. 노란 조명이 켜진 식탁위에 맛있고 따뜻한 음식을 함께하는 가족들끼리 하루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행복한 일이다.

인생을 살아보니 자신을 지키며 '침착하게'사는 것은 내공이 필요하다. 전쟁이나 태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저 세월이 가져다주는 훈장이 아니라는 말이다.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발달이론에서 자아정체성과 정체성 혼란을 정의했는데 외부의 영향에도 나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은 자아정체성이 잘 형성된 사람이라고 했다.

보통 청소년기, 넓게는 대학생 무렵까지는 자아정체성 확립에 중요한 시기이다. 자신의 개성에 강한 자부심을 가지는 청년은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고 자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바탕으로 건강한 성인으로 자라게 된다. 반면 이 시기에 정체성혼란을 극복하지 못하면 미성숙한 어른이 될 가능성이 높다.

내면의 평화를 지킬 줄 알고 어떤 상황에서든 침착하게 행동하는 사람은 빛이 난다. 에이모 토울즈가 쓴 '우아한 연인'이란 책이 있다. 1930년대 뉴욕 상류층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젊은이들의 이야기이다.

"처음 봤을 때부터 나한테는 당신 안의 차분함이 보였어요. 사람들이 책에 써놓았지만 실제로 갖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은, 내면의 고요함 같은 것. 그래서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죠. 저 여자는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그러다가 저건 후회가 없는 사람만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뭔가 결정을 내릴 때… 아주 차분한 마음으로 단호하게 결정을 내리는 사람만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 그게 나를 멈칫하게 했죠. 그래서 그걸 다시 보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어요."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에게 호감을 갖던 순간에 대해서 했던 말이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소설 속 여자처럼 누가 흔들지 못할 차분함을 갖추고 있다면 세상은 훨씬 더 평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이번 크리스마스 시즌에 차분하게 구운 페이스트리를 가족들 앞에 내놓고 싶다. 여러분도 따뜻하고 차분하게 겨울을 맞이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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