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을석 충북교육정책연구소 소장

문득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2007년도 영화가 떠올랐다.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반향을 일으킨 영화다. 늙은 보안관, 퇴직 군인, 냉혹한 킬러 등이 등장하는 범죄 스릴러물. 꽤 화제가 된 탓인지 주제가 어려워서인지 영화를 해석한 글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연금이 주는 노년의 평온함이라든지, 구속 없는 자유 속에서 추구할 꿈이라든지, 경험과 지식이 가져다준 노인의 지혜라든지, 믿고 따르던 가치와 규칙들이라든지…. 이 모든 것들이 깡그리 부정되는 세계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 제목이 던져주는 의미는 상당히 시사적이다.

제목을 살짝 비틀어 본다. '청소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고. 우리 청소년들이 싱싱한 젊음의 특권과 기쁨을 누리는지, 살아갈 세상에 대해 뚜렷한 꿈을 현재에 투영하고 있는지, 자신을 자각하고 자율적인 삶을 기획하며 함께 하는 사람들과 기쁜 마음으로 어울리는지 물어본다. 우리 청소년은 과연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가.

꽤 흥미로운(?) 통계를 하나 접했다. 2018년 12월 기준 우리나라 통계다. 노인복지관과 청소년 문화의 집은 각 6만 8013개소 대 270개소이다. 전자는 노인복지법 31조에 근거한 전국 노인여가복지시설 숫자이다. 읍·면·동당 19.4개. 자세히 살펴보면 노인복지관 385개, 경로당 6만 6286개, 노인교실 1342개다. 후자는 청소년활동 진흥법에 근거한 전국 청소년 문화의 집 숫자다. 공공 265, 민간 5개이다. 법 준수율은 7.7%이다. 우리나라가 노인을 위한 나라로 불릴 만큼 노인복지가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청소년복지와 대비되기에는 엄청난 복지시설을 갖추고 있던 셈이다.

청소년활동 진흥법 10조는 청소년 활동 시설의 종류로 청소년 수련관, 청소년 수련원, 청소년문화의 집, 청소년 특화시설, 청소년 야영장, 유스호스텔 등을 나열하고 있다.

11조에서 국가는 위 시설 중 국립청소년수련시설을 시·도지사와 시장·군수·구청장은 청소년수련관을 각 1개소 이상, 청소년 문화의 집을 읍·면·동에 1개소 이상 설치, 운영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의무규정. 그러나 그 의무를 10%도 안 지키고 있다.

충북지역의 청소년 복지시설 현황은 전국 상황보다 좀 나은 것 같다. 수련관 6개, 문화의 집 12개이다. 법대로라면 수련관은 16개, 문화의 집은 153개가 있어야 한다. 물론 의무적인 시설은 아니지만 수련원 19개, 유스호스텔 8개가 운영 중이기는 하다.

돌이켜보면 우리나라는 청소년 여가와 복지에 대해 상당히 둔감했다. 학교 담장 안으로 들어가면 '학생'이 돼버리기 때문에 청소년을 위한 정책적 노력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청소년들은 그저 입시와 학업에 사로잡힌 존재로서만, 또는 음주, 흡연, 가출, 비행 등 사건 사고를 일으켰을 때만 뜨거운(?) 관심을 받는 대상이기도 했다.

학생들이 학교 담장을 벗어나면 그대로 청소년이 되고 주민이 되지 않는가. 그런 의미에서 청소년의 삶의 질과 복지를 위해 일반 지방자치단체들이 더 큰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청소년이 삶 속에서 행복할 때 행복한 미래를 설계할 수 있고, 청소년의 건강한 성장이 나라의 미래를 가꾼다. 학업 성적은 높지만 삶의 만족도는 늘 꼴찌인 부끄러운 현실을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