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형 을지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잠들기 전 이불 위에 옹기종기 모여 아이들과 가지는 시간, 바로 '감사의 시간'. 이 시간을 가지게 된 데는 필자 나름대로의 계기가 있다.

우리 가족은 아직도 한 방에서 같이 잔다. 무섭기 때문에 같이 자고 싶다는 아이들의 단순한 요구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이 잠들 때까지는 아무리 피곤해도 먼저 잘 수가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빠를 가운데에 두고 누운 첫째와 둘째 아이는 눈을 뜨고 계속 자기들을 보고 있어라, 등을 긁어 달라, 손을 꼭 잡아 달라 등의 다양한 요구들을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압권은 막내의 '아빠 배 올라타기'이다. 형과 누나에게 자리를 내 준 탓에 그럴 수밖에 없다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가해지는 육중함에 조금씩 가슴이 눌리면서 숨이 차오르게 되면 한동안 잠을 청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를 때도 있다. 일과가 억세어 일찍 쉬고픈 마음이 간절할 땐 아내에게 특별히 도움을 구하고 몰래 방에 들어가 눈을 붙인다.

그러나 눈치가 구단인 막내는 가끔 방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아빠'하고 소리치며 자신의 몸을 덥석 필자의 몸에 포개어 버린다. 그걸로 끝내면 좋으련만 막내의 집념은 끈질기다. 아빠 몸을 흔들며 밖에 나가자고 끊임없이 매달린다. 과연 이를 뿌리칠 장사가 있을까. 이쯤 되면 아이의 손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다. 엄마가 아빠의 편을 들든 말든 막내는 아랑곳 하지 않는다. 묵묵히 자신의 목표만을 향해서 달려가는 모습이 정말 얄미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러한 고충을 덜기 위해 아이들의 눈이 감기기를 간절히 바라며 동화책을 열심히 읽어 주는데 눈들은 말똥말똥, 오히려 자리싸움까지 하느라 티격태격하며 필자의 속을 자주 긁어 놓는다. 피곤함에 책 읽을 힘조차 없을 때는 누운 채로 어릴 적 필자의 기억 속 동화들을 상기시키며 읊어 줄 때가 있는데 이야기가 마칠 때쯤엔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로 탈바꿈되어 있기도 한다. 적절한 동화가 도무지 생각나지 않으면 이야기를 지어내어야 하는데, 구슬을 하나씩 꿰듯 이야기를 이어가다보니 내용상 앞뒤가 맞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그 얘기들이 재미있는 지 또 해달라고 한다. 그러면 낭패다. 지어낸 이야기이기에 다시 하면 색다른 이야기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렇듯 시간이 지날수록 필자의 머릿속에 저장된 이야기 공간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음을 절감하게 되면서 한계상황에 직면하다 보니 필자 혼자로서는 도저히 그 욕구들을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고, 필자 혼자만이 아닌 아이들 스스로가 직접 말하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다가 떠오른 생각이 바로 '감사의 대화 시간'이다.

이것은 오늘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돌이키며 생각할 시간을 잠깐 가진 후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감사한 일 한 가지를 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무엇보다 좋은 것은 필자는 '오늘 감사한 일 말해 볼 사람' 하고 간단한 질문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서로 먼저 말하려고 난리다.

한 가지만 말해도 될 것을 두세 가지는 기본으로 내뱉는다. 한 아이가 시간을 끌다보니 둘째 순서를 기다리는 아이는 짜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막내는 순서에 민감하지 않다. 알아듣기 힘든 말을 혼자서 중얼거리는가 하면 갑자기 큰 소리를 내며 다른 사람의 말을 가로 막기도 한다.

필자는 지켜보기만 할 뿐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정리가 되기도 하고, 티격태격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서로를 기다려주는 모습도 자주 발견된다.

필자에게 감사의 대화 시간을 통해 얻은 또 하나의 유익을 꼽으라 하면, 아이들의 감사 이유들에서 알게 된 순수함이라고 답변하고 싶다. 밥 먹을 때 자신이 좋아하는 반찬을 준비해 준 엄마에게 감사하다는 내용, 오늘 햄버거를 먹게 해줘서 감사하고, 아빠가 바둑 상대가 되어 주어서 감사하다는 등 그 내용에는 화려함이나 꾸밈이 없다.

전혀 생각지 않았던 소소한 이유들에서 감사의 이유를 찾은 아이들의 고백 앞에 부모로서 부끄러움이 느껴진다. 더욱 더 필자를 놀라게 했던 한 가지는 아빠, 엄마, 오빠, 동생이 함께 있어서 감사하다고 하면서 한 사람씩 돌아가며 안아주던 둘째 아이의 행동이었다. 그때의 진한 감동은 앞으로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한 번은 큰 아이가 감사한 것 말고 기뻤던 것도 말하면 안 되냐고 용감히 제안한 적이 있다. 이젠 밤이 그렇게 걱정스럽지만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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