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금학 청주시 공원조성과 공원정책팀장

근 김진명 작가의 소설 '직지'를 읽었다. 호기심을 끄는 스토리와 실존하는 인물, 내가 실제 방문했던 장소가 등장해 소설에 푹 빠져들었다.

소설 '직지'는 사실과 허구를 다루며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구텐베르크가 처음 금속활자로 찍은 '42행 성서' 보다 우리의 금속활자본인 '직지'가 최소 78년이 앞섰다는 사실과 외국학자가 전자 현미경으로 직지와 구텐베르크의 성서를 비교한 결과 두 책 모두 종이 표면에 똑같은 모래 알갱이 흔적이 있다는 과학적인 증명을 바탕으로 한다.

두 번째는 직지의 금속활자 기술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쳐 한글에 영향을 끼치고 서구의 구텐베르크에게까지 어떻게 전수될 수 있었는가 하는 일련의 과정을 담아낸 작가의 상상력과 시공간을 초월한 스토리 진행이다.

이야기는 사회부 기자 기연이 기괴한 살인 현장을 취재하면서 시작된다. 취재 과정에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서원대와 교수가 등장하고 살인사건이 직지와 관련됐으며, 고려시대 직지의 금속활자 기술이 조선시대의 활자장인 은수를 통해 우리의 한글과 서구의 구텐베르크에게 전해지게 되는 과정을 흥미롭게 풀어간다.

조선의 활자장인 은수는 세종을 도와 고려시대 직지의 금속활자 제조법을 활용해 한글 보급을 위한 활자를 만들다 사대부의 반발과 위협으로 추격을 피하면서 로마로 가게 된다. 은수는 로마에서 금속활자 제조법을 교황에게 선보이지만 조선에서와 마찬가지로 기득권층의 지식 향유와 독점으로 대주교에 의해 마녀로 몰려 화형에 처할 위기에 놓인다. 하지만 그곳에서 우연히 종교계에 막대한 영향을 지닌 성직자 쿠자누스의 도움을 받게 된 은수는 생명을 부지하고, 활자 만드는 법을 쿠자누스가 소개한 구텐베르크에게 기술을 전해 금속활자가 세상에 알려진다. '직지가 씨앗이라면, 구텐베르크는 누구보다도 화려하게 꽃을 피우고 열매 맺게 한 정원사다'라는 구절처럼 우리의 금속활자 기술이 구텐베르크의 인쇄기술을 통해 전 세계로 퍼졌다. 그리고 오랜 역사와 세월을 거쳐 탄생한 정보 공유를 위한 노력은 오늘날 내가 이 소설을 접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현재의 우리가 누리고 있는 컴퓨터, 스마트폰 등 이전보다 훨씬 손쉽게 다양한 정보를 얻고, 만들 수 있게 된 것은 금속활자와 인쇄술을 거쳐 지금의 우리에게 전해진 사랑의 힘이다. 직지, 한글 그리고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의 공통점은 소설 속 은수의 목걸이에 새겨진 문구'Tempus Fugit Amor Manet(세월은 흘러도 사랑은 남는다.)'에서 나온 소설의 부제 '아모르 마네트'가 잘 보여준다. 소수의 상위계층만이 누렸던 지적 특권을 더욱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 권리를 나눠주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백성을 위한 문자 한글을 만든 세종과 그런 문자를 보급하기 위해 목숨을 건 은수의 금속활자 기술 전수는 모두 타인을 위한 배려, 사랑과 희생에서 나온 것이다. 소설을 읽은 후 지금까지도 '아모르 마네트'라는 글귀가 아른거린다.

소설을 통해 직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고, 나와 동떨어진 과거의 유물이 아닌 지금의 나의 삶과도 이어져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지금 이 시대에 사는 우리는 이기심·이타심 중 어느 것에 비중을 두고 있을까? 저마다의 목소리를 키우며 타인의 배려가 적은 요즘 한글 창제의 세종대왕과 소설 속의 은수와 같은 사랑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에 퍼질 수 있다면 삶은 풍요롭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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