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의 충청역사유람] 53 천태산 은행나무와 영국사(寧國寺)
천연기념물 천태산 영국사 은행나무
문화예술인 500명 속한 팬클럽 활동
영국사, 고려때 나라 지켜 얻은 이름
700년 신라 효소왕도 이곳에 피신…
714.7m 천태산 국내 ‘100대 명산’
천태산이 감싼 영국사… 평화 그 자체

▲ 충북 영동군 양산면에 있는 천태산 영국사의 은행나무는 수령 1000년이 되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됐을 뿐 아니라 '천태산 은행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조직을 거느리고(?) 있다. 천태산 은행나무는 그 모습이 작은 산 하나를 옮겨 놓은 것처럼 웅장할 뿐 아니라 그 가지 하나가 땅에 묻혀 자란 것 역시 큰 거목을 이뤄 생명의 존엄성을 느끼게 한다. 영동군 제공
▲ 영국사 극락보전. 영동군 제공
▲ 천태산 가을 풍경. 영동군 제공
▲ 영국사 대웅전. 영동군 제공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 등 특정 사람을 사랑하는 모임은 보았으나 특정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있다는 이야기는 여간해서 듣기 힘들다.

그런데 충북 영동군 양산면에 있는 천태산 영국사의 은행나무는 수령 1000년이 되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됐을 뿐 아니라 '천태산 은행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조직을 거느리고(?) 있다.

저명한 양문규 시인을 비롯해 서울, 부산, 대전 등 문화예술인이 500명이나 가입하고 있다. 회원이 많을 뿐 아니라 그 활동도 눈부시다. 지난달에는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아래서 시 낭송회를 비롯 작은 음악회까지 열며 은행나무가 갖는 생명의 외경심, 평화, 자연을 찬미하고 그 신비를 공유하는 행사도 가졌다.

그렇게 천년 세월을 굳건히 버텨온 천태산 은행나무는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그 모습이 작은 산 하나를 옮겨 놓은 것처럼 웅장할 뿐 아니라 그 가지 하나가 땅에 묻혀 자란 것 역시 큰 거목을 이루어 생명의 존엄성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이 은행나무는 영험한 전설도 지니고 있다. 나라에 큰 변고가 있을 때는 소리 내어 운다는 것이다. 6·25 전쟁이 날 때도 그랬고 크고 작은 전란이 있을 때면 그렇게 소리를 냈다는 것인데 그것은 나라와 백성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는 뜻인지 모른다. 그래서 이 나무가 더 존경받는 것일까?

천태산 은행나무는 그 혼자서 가치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100대 명산의 하나인 천태산(해발 714.7m)과 신라 문무왕 8년 원각국사에 의해 세워진, 그러니까 1000년 역사를 지닌 영국사(寧國寺) 등 이렇게 셋이 3박자 조화를 이뤄 장엄한 풍광을 연출하는 것이다.

영국사의 원래 이름은 '국청사'. 그런데 이렇게 이름이 바뀐 데는 사연이 있다. 고려 때인 1359년 12월 중국에서 일어난 홍건적의 난이 그것이다. 홍건적은 그 해 겨울 4만명이 결빙된 압록강을 건너 의주, 정주, 평양을 순식간에 점령하고 거침없이 개경(개성)을 위협했다. 이에 공민왕은 서둘러 피난길에 올랐으며 이곳 천태산 아래 영국사에 짐을 풀었다. 왕은 이곳에서 밤낮없이 불공을 드리며 홍건적의 퇴치를 빌었다. 그런 가운데 마침내 고려군에 의해 홍건적이 물러갔다는 소식을 접하고 너무 기뻐 절 이름을 '영국사'로 고쳐 부르도록 했다. '나라를 편안하게 하는 절'이라는 뜻이다.

이 절에 피난 온 임금은 고려 공민왕 뿐 아니라 훨씬 이전에 신라 효소왕도 이곳에서 피난한 일이 있다. 서기 700년 신라의 궁내에서 모반을 일으킨 사건이 있었는데 효소왕은 잠시 이곳으로 몸을 피한 것이다.

이렇듯 두 임금이 피난을 할 만큼 영국사는 천태산 줄기가 암탉이 알을 품듯 감싸고 있어 유사시 방어하기 좋은 지형을 갖추고 있다. 이 때문일까. 영국사 뜰에 앉아 대웅전 처마에 달린 풍경소리를 들으면 더 없이 마음의 평화를 가득 느끼게 된다. 그리고 깊어가는 만추(晩秋), 천태산 암벽을 오르는 젊은 산악인들이 외치는 '야호~'소리가 정겹기만 하다.

이곳 천태산 은행나무와 영국사 말고도 그 옆을 흐르는 금강 주변에는 이른바 '양산(陽山) 8경’이라 부르는 아름다운 경치가 줄지어 있어 너무 좋다.

<전 세종시 정무부시장·충남역사문화원장>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