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문화 신문>
향교, 성균관 하급 관학 기능… 유교 교육
회덕향교 대덕 위치… ‘市 문화재자료 5호’
조선초 건립추정… 임란 소실, 순조때 중수
외삼문 지나 들어가면 명륜당… 강학 기능
그 뒤 내삼문 안에 대성전… 성현 모셔
[충청투데이 노진호 기자] 향교(鄕校)는 조선시대 효(孝) 교육의 최일선에 있었다. 서울의 사학(四學)과 마찬가지로 향교도 성균관(成均館)의 하급 관학(官學)으로서의 기능을 담당했다.
경국대전에 보면 향교는 각 지방관청 관할 아래 부(府)·대도호부(大都護府)·목(牧) 각 90명, 도호부 70명, 군(郡) 50명, 현(縣) 30명의 학생을 수용했으며, 종6품 교수와 정9품의 훈도(訓導)를 뒀다. 또 5~7결(結)의 학전을 지급해 운영비용을 충당하게 했다.
이번 '효문화신문'에서 소개할 곳은 대전시 대덕구에 있는 '회덕향교(懷德鄕校·대전시 문화재자료 제5호)'이다. 회덕향교의 건립은 조선 초기로 추정되며, 임진왜란 때 소실돼 1600년(선조 33년) 중건했고 1812년(순조 12년) 중수했다. 또 광복 이후 1969년 전반적인 보수가 있었다.
회덕향교 이정표를 보고 차로 조금 이동하니 '하마비(下馬碑)'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하마비란 그 앞을 지날 때는 신분 고하(高下)를 막론하고 타고 가던 말에서 내리라는 뜻을 새긴 석비로 대개 왕장(王將)이나 성현 또는 명사·고관의 출생지나 분묘, 조선의 사립학교였던 서원(書院)이나 향교 앞에 세워져 있다.
하마비를 살펴보고 나쁜 기운을 막아준다는 '홍살문(紅箭門)'을 지나니 회덕향교의 정문인 '외삼문(外三門)'이 나타났다. 외삼문은 충·효·예를 상징하기도 한다. 전국의 모든 향교는 동입서출(東入西出)이 원칙이어서 들어갈 때는 오른쪽, 나올 때는 왼쪽 문을 통해야 한다. 가운데 문은 제사를 지낼 때만 열어두며, 그 때도 '산 사람'은 이곳을 통해 드나들 수 없다.
솟을산문형 외삼문의 동쪽 건물은 제향을 준비하는 전사청(典祀廳)을, 서쪽은 공부하는 서재(書齋)를 배치했다.
외삼문을 지나 발걸음을 옮기니 향교의 강학 기능을 담당하는 '명륜당(明倫堂)'이 나타났다. '명륜'이란 인간사회의 윤리를 밝힌다는 뜻으로, '맹자' 등문공편 중 "학교를 세워 교육을 행함은 모두 인륜을 밝히는 것이다"라는 구절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명륜당을 지나면 푸른 잔디와 노란 은행나무가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작은 터가 있는데 예전 동재와 서재가 있던 곳으로 추정된다. 향교의 동재는 양반이, 서재는 서류(庶類) 출신 학생이 기거했다.
지금은 그 흔적이 사라진 회덕향교 기숙사(동재·서재) 모습을 상상하며 산 자와 죽은 자의 공간을 분리하는 '내삼문(內三門)'을 지나기 위해 10단의 계단을 올랐다. 내삼문을 지나면 회덕향교의 배향(配享) 기능을 담당하는 대성전(大成殿)이 나타난다.
이곳 대성전에는 공자(孔子)·안자(顔子)·증자(曾子)·자사(子思)·맹자(孟子) 등 중국의 5성(五聖)과 주돈이·정호(程顥)·정이·주희(朱熹) 등 송조 4현(宋朝 四賢)의 위패가 중앙에 모셔져 있으며, 그 양 옆으로는 한국의 18현이 자리 잡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한국의 18현은 신라의 설총과 최치원, 고려의 안유와 정몽주, 조선의 정여창·김굉필·이언적·조광조·김인후·이황·성혼·이이·조헌·김장생·김집·송준길·송시열·박세채 등을 뜻한다.
하나 재미있는 것은 다른 지역 향교의 경우 대부분 한국 18현 중 우암 송시열이 먼저 오고 동춘당 송준길이 뒤를 따르는데 이곳만큼은 동춘당이 앞서 있다. 일종의 '홈 어드밴티지'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또 회덕향교는 명륜당이 먼저 있고 대성전이 마지막에 자리했는데 그 이유는 이곳이 구릉지에 지어졌기 때문이다. 평지에 위치한 향교의 경우에는 대성전이 가장 앞에 배치되기도 한다.
회덕향교는 결국에는 막을 내린 조선 왕조의 유물이지만, 여전히 살아있는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거의 매주 학생들을 대상으로 유교 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으며, 인근의 동춘당 등과 연계한 문화재 탐방도 이뤄진다.
물론 해마다 음력 2월과 8월 상정일(上丁日·음력으로 매달 첫째 드는 정의 날)의 석전제(釋奠祭)와 매달 삭망례(朔望禮) 등 향교 고유의 기능과 그 전통도 지켜가고 있다.
이처럼 회덕향교가 살아있는 공간으로써 시민과 함께 할 수 있던 것은 대덕구 향토문화연구회의 역할이 컸다. 사실 불과 5년 전까지는 회덕향교를 찾아도 그 문을 열 수 없었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대덕구 향토문화연구회 회원들의 노력으로 그 문이 열린 것이다.
현장에서 만난 김은정 문화관광해설사(대덕구 향토문화연구회)는 "문화재는 닫혀 있으면 의미가 없다. 그 활용이 중요하다"며 "예전에는 토요일과 일요일에만 문을 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도 예산 등 이런저런 이유로 12월부터 1월까지는 운영을 중단한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충효의 고장 충청의 중요 문화재 중 하나인 회덕향교. 이번 주말이라도 꼭 한 번 찾아 이곳에 스민 효의 향기를 직접 느껴보길 바란다. 노진호 기자 windlake@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