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윤 배재대 주시경교양대학 교수

16세기 초에 최세진이 쓴 ‘훈몽자회’에서는 '학문을 하여 벼슬자리에 오른 사람(學而居位曰士)'을 선비라했다. 17세기 상촌 신흠은 ‘사습편’에서 ‘몸에 재능을 지니고 나라에서 쓰기를 기다리는 자’를 선비라 한다. 뜻을 고상하게 가지고 배움을 돈독하게 하며, 예절을 밝히며, 의리를 지니며, 청렴을 떳떳이 여기며, 세상사에 급급해하지 않는다고 선비를 정의했다.

18세기에 연암 박지원은 '독서를 하면 선비, 정치를 하면 대부(讀書曰士, 從政爲大夫)'라며 사대부가 유학을 공부하는 모든 선비들을 일컫는 말이 됐고, 이들은 지식인·독서인 계급을 형성해 조선의 학문을 이끌어 왔다. 이렇듯 선비는 자신의 인격적 완성을 위해 끊임없이 학문과 덕성을 쌓으며, 세속적 이익보다 대의와 의리를 위해 인격의 완성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한마디로 수기치인을 지향하는 선비들이 조선의 리더인 것이다.

조선의 리더가 선비라면 현대의 리더는 조선의 선비정신을 지녀야 한다. 현대가 원하는 이상적인 리더는 견제와 균형 감각을 유지해 조직과 단체를 이끌어가는 선비정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선비를 리더와 등가(等價)의 대상으로 놓는다면, 선비정신이 바로 '리더십'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리더십은 덕(德)과 재(才)의 유무가 필수적이다. 덕이 없으면 자격 미달이고, 재가 없으면 수준 미달이다. 그러므로 덕과 재를 모두 겸비한 사람이 성인(聖人)이고, 덕이 재능을 뛰어넘는 사람은 군자(君子), 덕이 재능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을 소인(小人)으로 분류할 수 있다. 두 가지 모두 부족한 사람은 가장 하층의 우인(愚人)으로 분류하니, 리더는 덕과 재를 겸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수신을 기본으로 자신의 인격을 가다듬고 연마하는 것이 유가(儒家)의 필수 덕목이므로, 수양도 제대로 안된 사람은 조직을 이끌 리더십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리더가 리더답지 못하면 과거의 소인유(小人儒), 부유(腐儒), 속유(俗儒)와 같은 선비들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초나라 항우와 한고조 유방의 싸움은 '하여(何如)' 대 '여하(如何)'로 성패가 갈렸다고 한다. 항우는 전쟁에서 이길 때마다 항상 "내 공이 어떠냐?(何如)"라며 자신의 공치사에 바빴고, 유방은 늘 "어떻게 하지?(如何)"라며 겸손하게 주변의 인재들에게 자문을 구하기에 바빴기 때문이다. 둘의 차이점을 굳이 부언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현대의 리더는 유방의 '여하의 리더십', 나아가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을 본받아야만 한다. 자신을 낮추어 타인을 섬기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사람됨을 추구해야만 하는 것이 선비인 것이다.

선비를 가리키는 '유(儒)'를 파자(破字)하면 사람 인(人)과 구할 수(需)로 나눌 수 있는데, 이는 '사람됨의 이치를 구하는 사람'이 선비라는 뜻이다. 사람의 됨됨이가 '위인(爲人)'이라면, 충분히 우리가 '인위(人爲)'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현대의 리더는 자신의 말과 행동에 도덕적 가치 판단의 기준을 내릴 줄 아는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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