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수 ETRI 기술상용화센터장

노벨상 수상자 발표가 지난 10월에 있었다. 아쉽지만 우리나라 연구자는 올해도 포함되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노벨상 수상자 미배출의 이유와 문제점을 지적한다. 그중에서 출연(연)과 대학 등 연구현장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된 것이 있다. 논문의 양과 질에 대한 문제이다. 결론은 거의 이렇게 나고 있는 듯하다. "연구자들이 수많은 논문을 발표하고 있으나 논문 수만 많을 뿐, 세계적으로 가치를 평가받을 만한 질적으로 뛰어난 논문은 희소하다. 이를 개선하지 않는 한 노벨상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이러한 문제 제기 때문인지 연구현장에도 조금씩 변화의 움직임이 일어났다. 오랜 기간 연구자에 대한 주요 평가지표였던 '논문 게재수'가 슬며시 지표에서 사라졌다. 대신 논문이 얼마나 영향력 있는지를 평가하는 '논문 임팩트 지수'라는 것이 등장했다. 이후부터 논문 발표 건수는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덩달아 연구자들은 최고의 학술지가 아닌 곳이라면 논문을 투고할 때부터 여기저기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누군가 논문을 조금 덜 유명한 곳에 게재라도 하면 "나 같으면 그런 논문 안 쓰겠다"고 비아냥대는 이들도 생겨났다.

국내외 학술대회나 세미나에서 자신의 논문을 발표하는 사람들이 줄어든 것도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연구기관만 하더라도 예전에는 관련 기술 분야에서 학술대회나 콘퍼런스가 개최되기라도 하면 주변 동료들이 발표자 리스트를 빼곡히 채웠다. 하지만 이제는 언제 그런 시절이 있었느냐는 듯, 그곳에서 동료의 이름을 발견하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나마 창의적인 연구결과물을 통해 세상에서 주목을 받는 연구자들이 하나둘씩 나오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주변의 평가는 예전 같지 않다. 격려와 응원의 눈빛보다는 걱정과 우려의 시선이 더 늘었다.

한편, 미국 캘리포니아대 딘 키스 사이먼튼 교수는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과학자 수백 명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토대로 논문의 양과 탁월한 창의성 간의 관계를 조사해서 발표한 적이 있다. 연구결과는 우리가 변해가고 있는 모습과 너무 반대편의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그 연구에서 드러난 결과를 보면, 세계 최고의 과학자라 불리는 이들도 그들의 논문 대다수가 다른 논문이나 저작물에 거의 인용되지 않았다.

성공의 발판에 올려놓은 논문은 불과 몇 편에 불과하였다. 아인슈타인이 그 좋은 예인데 그는 240편의 논문을 썼지만, 극소수만 주요한 영향을 끼쳤다. 게다가 동료 과학자들로부터 가장 창의적이라고 평가를 받은 연구자들은 그들이 얼마나 질적으로 우수한 논문을 발표했는가가 아니었다. 그들은 현직에서 가장 많은 논문을 펴낸 과학자들이었다. 역설적이게도 논문의 생산량이 창의성과 명성을 가늠하는 중요 예측변수라는 것처럼 들린다. 더 놀라운 것은 한 과학자의 경력을 연도별로 관찰해보니 최상급의 논문 중 하나를 펴낸 해에는 다른 어느 해 보다 많은 논문을 썼다는 것이다. 사이먼튼 교수는 연구결과를 정리하며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질적으로 우수한 창의적 논문을 내놓는 가장 좋은 방법은 논문을 많이 쓰는 것이다" 논문의 질은 논문의 양에서 나온다는 의미이다. 양질전환의 법칙이 그것이다.

물론 논문을 많이 쓰는 연구자가 모두 세계적인 우수한 성과를 내지는 않는다. 얼마 전 가짜 국제학술대회 참가한 연구자들로 홍역을 치른 것처럼 논문을 개인 사욕에 이용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세계적인 논문을 발표한 연구자들은 모두 한결같이 논문을 많이 발표한 연구자들이라는 점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만일 우리가 논문의 양과 관련하여 연구자들에게 행여나 부담을 지워 논문 쓰기를 주저하게 한다면, 어쩌면 영영 세계적인 과학자를 배출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금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연구자들이 논문으로 마음껏 놀게 하자. 열심히 논문을 쓰고 학술대회나 콘퍼런스에도 참가하도록 장려하자. 이 모든 노력이 질적으로 변환되는 순간, 우리는 대한민국의 노벨상 수상자를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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