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54년 빅토르 위고가 망명지인 영국령 저지 섬에서 사형수 태프너 구명운동을 하며 그린 드로잉. 어린시절 목격한 사형수 모습은 생애를 시종해 위고에게 강박관념을 형성했다.

며칠 전 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하며 이례적으로 가석방이 허용될 수 없음을 강조했다. 사형선고 대안으로 강력한 징벌 의지를 밝힌 셈인데 실질적 강제효과는 없어서 선언적 수사(修辭)차원에 머무는 느낌이다. 가석방 결정은 법무부 소관이어서 사법부의 의지와는 별개이므로 실질적 사형 폐지국이 된 이후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범죄에 대한 단죄가 미흡하다는 여론이 높다.

사형제 폐지에 관련해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1802~1885)가 작품으로, 행동으로 전 생애를 통해 표출한 대안 제시는 그런 의미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법률상으로는 아직 사형제도가 존속하고 있지만 1997년 이후 집행이 없어 실질적인 사형 폐지국으로 간주되는 우리나라에서 극악무도한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사형 집행을 재촉하는 여론은 비등하다. 이에 맞서 사형제 폐지의 목소리도 높아지는 소모적인 양상이 지루하게 이어진다, 위고는 '사형수 최후의 날'이라는 소설에서 사형수 생활, 감옥과 관련된 저변의 환경을 재현하면서 대안을 제시했다.

당초 위고는 판사는 의사가 되고, 감옥은 병원이 돼야 한다는 단순한 생각에 머물렀으나 1834년 이후 보다 광범위하고 구체적인 개혁방안을 표출했다. 위고는 사형 폐지 이외에도 아동과 여성의 권리 보장, 정교(政敎)분리, 보통선거, 사상·표현의 자유, 유럽연합 구상 등 숱한 현실참여 주제를 개진해 그 후 대부분 실천됐거나 개선되고 있다. 그러나 사형제도 철폐 여부는 아직 여러 나라에서 담론의 대상으로 남아있다.

위고의 사형폐지론을 요약하면 1)사형은 공인된 사회범죄이며 2)복수와 징벌을 거론하지만 복수란 개인적 감정의 분출이며, 징벌은 인간 차원을 넘어선 신의 영역에 속하는데 사회는 그 중간에 위치할 따름이고 3)사형에서 일벌백계의 효과를 기대하지만 법의 이름 아래 사람을 죽임으로써 윤리적 타락의 근원이 된다. 또한 그때까지 극형이 존속돼 왔어도 범죄는 더욱 잔인해지고, 지능화, 대량화되고 있을 따름이라는 것이다.

일체의 감형이나 가석방을 배제한 무기징역을 제시했던 위고의 이 대안은 우리 국회에도 줄곧 상정됐지만 관심 부족으로 번번이 자동 폐기됐다. 지금 20대 국회에서도 계류 중이지만 당리당략 정쟁에 분주한 의원들의 관심 밖이다. 우리 사회 사형제도 찬반 담론의 논거와 대안이 아직 19세기 중반 빅토르 위고 시대의 수준을 크게 넘어서지 못하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사형제도를 존치시켜 신속히 집행하거나 법개정으로 감형없는 무기징역으로 대체하는 등 신속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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