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태 대전 서구청장

‘혁신(革新)’은 가죽을 벗겨 새롭게 한다는 의미다. 외환·금융위기를 겪으며 사회 전반적 위기의식이 높아졌고, 4차 산업혁명이란 시대적 조류와 함께 혁신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거의 모든 분야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단어가 됐다. 이러한 흐름에도 불구하고 혁신에 가장 둔감한 곳은 정부조직이다.

지난달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19년 세계경제포럼(WEF) 국가경쟁력 평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41개국 중 종합순위 13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정부혁신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라 할 수 있는 정부의 변화 대응력, 규제개혁에 관한 법률적 구조의 효율성, 정부규제가 기업 활동에 초래하는 부담은 각각 36위, 67위, 87위에 머물렀다. 그동안 정부혁신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정부조직의 혁신이 더딘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절차와 규정을 중시한다. 물론 정해진 절차와 규정에 따라 법을 집행하는 것은 공직자 본연의 임무다. 하지만 형식주의에 빠져 새롭게 요구되는 수요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하게 된다.

둘째, 행정서비스의 형평성이다. 행정서비스에서는 평등의 원칙이 강조된다. 민원, 복지, 조세 등 그 성격상 효율성보다는 형평성이 중시되는 분야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혁신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셋째, 비용절감 유인의 문제이다. 공공부문의 원가는 상식적인 수준에서 산출되고 관행적으로 승인되며, 집행된다. 비용절감 측면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지는 않는다. 원가절감을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민간부문과는 차이가 크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공직자들에게 절박한 위기의식이 없고, 혁신에 대한 실행의지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사실 혁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공직자는 거의 없다. 정부마다 혁신의 가치를 강조해왔고, 중장기 국정운영의 기조로 정부혁신을 추진해왔기 때문에 혁신에 대한 제도적인 틀은 갖춰져 있다.

범정부 협업 촉진, 낡은 업무 관행 제거, 불필요한 일 버리기, 종이 없는 회의, 주민 정책참여 확대 등 정부혁신과 관련된 다양한 정책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진행돼 왔다. 문제는 실행이다. 정책이 아무리 좋다 해도 실행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성과는 제자리걸음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혁신의 출발점은 결국 구성원 개개인이기 때문에 공직자들이 스스로 도전적 목표를 설정하고, 자기 주도적 혁신을 이뤄야 한다.

공직자들에게 혁신은 기피하고 싶은 용어이며, 부담스러운 활동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적응하는 자가 살아남는다는 적자생존(適者生存)이라는 말이 혁신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혁자생존(革者生存)으로 대치되고 있는 시대다. 공직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좀 더 적극적인 실행의지를 갖고 혁신의 주인공으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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