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철 대덕대학교 교수

8시 뉴스를 보고 나서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었다. 집사람이 어디 가냐고 묻기에 "그냥 동네 한 바퀴" 하고 대답했다. 집을 막 나서려는데 집사람이 음식물쓰레기 봉투를 손에 들려준다. 아차! 내 실수다. 조용히 나갔어야 했는데…. 현관을 나서자마자 앞집 똥개 세 마리가 또 짖어댄다.

하여튼 기가 막힌다. 저놈의 똥개들은 치킨집 아저씨가 와도 짖지 않으면서 내 발소리는 어쩌면 그리도 귀신같이 아는지. 6개월쯤 전 아파트 화단에서 목줄이 풀린 채로 앞집 강아지 혼자 큰일을 보고 있을 때 내가 걷어차는 시늉을 했더니만, 그 후로는 내 발소리만 나면 짖어댄다. 음식물 쓰레기부터 버리고 산책을 시작한다.

봉명동주민센터를 지나 오른쪽으로 돌아서니 이발소가 보인다. 10년을 넘게 다닌 단골인데 아저씨가 지난봄 췌장염으로 돌아가셨다. 한동안 문을 닫았는데, 요즘 가게문이 다시 열려 있다. 리베라 호텔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리베라 호텔은 철거된지 꽤 오래됐건만 아직도 공터다. 호텔공터 앞에는 유성경찰서 현수막의 문구가 기가 막히다. ‘성매매 전단지 뿌리면 경찰이 먼저 찾아간다’ 오른쪽으로 돌아 유성중심가 쪽으로 길을 잡았다. 아드리아 호텔 앞 철판으로 된 높은 가림막에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있다. ‘본 건물 유치권 행사 중입니다. 관계자외 출입금지’ 아드리아 호텔도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중인가보다. 횡단보도 저쪽에 ‘유성국화 전시회’라는 네온사인이 눈에 들어온다. 길을 건너 유성우체국쪽으로 향했다. 우체국 앞길을 예쁜 국화들로 전시해 놓았다. 앞으로 걸어가던 나는 순간 깜짝 놀랐다. 꽃으로 만든 몸통 위에 잘린 강아지 머리를 올려놓은 흉측한 전시물이 눈에 보인다. 유성의 명물 족욕장을 지나 계룡스파텔 까지 걸어갔다. 해장국집 앞에 재미있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다’

계룡스파텔을 등지고 큰길쪽으로 길을 잡았다. 한 때는 이 골목이 대전의 유명한 술집들로 불야성을 이루던 곳이었는데, 이제는 여기저기 건물 임대한다는 쪽지만 붙어 있다. 골목 끝 큰길과 만나는 지점에 숯불갈비집이 보인다. 석달 전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님께서 좋아하셨던 식당이다. 오른쪽으로 돌아가다 보니 새로 올라간 건물이 보인다. 르네상스 호텔이란다. 호텔 옆에는 공사가 한창이다. 내년 4월에 오픈한다는 10층짜리 건물로 중부권 최고의 아울렛이라고 요즘 선전이 한창이다. 유성전철역 지하도를 지나 아파트 입구로 들어선다. 아파트우편함에 꽂혀있는 우편물 몇 개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우리층에서 내렸다. 내리자마자 또 옆집 똥개들이 짖어대고 난리가 났다. 이럴 때면 나는 사람이 못 들을 정도의 아주 낮은 목소리로 같이 짖어준다. 사람은 듣지 못해도 개들은 청각이 밝아서 작은 소리도 잘 듣는다는 이야기를 책에서 본 적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아주 낮은 목소리로 "월월~ 월월~" 하고 대응을 해주면 이놈들은 더 자지러지게 짖어댄다. 앞집 아주머니가 문을 열고 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민첩하게 우리 집 현관문을 열고 쏙 들어와 버렸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큰소리로 외쳤다. "여보님! 산책 다녀왔습니다." 오늘 대전 유성유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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