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춘광 원작 신파극 '검사와 여선생'은 광복 이후 세 번 영화로 제작됐는데 사진은 1958년 작품. 사진=양해남 컬렉션

학부와 대학원에서 전공강의를 수강했던 학생들이 통틀어 약 1500명 쯤 되는 듯 싶다. 인터넷 강의도 오래했는데 이 경우는 수강생들과 직접대면과 교류가 어려운 탓에 예외로 한다. 1500명 중에는 지금도 소식을 주고받으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주례를 선 경우도 적지 않지만 이름과 특성, 사회진출 이후의 근황 정도만 알고 있는 졸업생이 대부분이다. 이중 더러는 메일 등을 보내오면서 제자 아무개라고 적기도 하는데 이럴 때마다 어색하고 쑥스럽다. 몸에 맞지 않는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거북하기도 하다. '제자'가 있으면 '스승'이 있어야 하는데 그럴 깜냥이 되는지 여전히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강의에서 이루어지는 지식전수 이외에 인격이나 삶의 여러 측면에서 본받을 만하고 일정부분 영향을 주어야 스승이라는 개념이 성립한다는 오랜 믿음이 있는 까닭이다.

그래서 제자보다는 졸업생이라는 명칭을 쓴다. 하기야 정규 교육기관이 아닌 평생교육원이나 학원, 문화센터에서 한 두 학기 자신의 강의를 수강한 사람들전부를 스스럼없이 제자라고 부르는 분들이 많다. 그들은 수강생 모두를 제자라는 범위에 넣는 듯 하고 그래서 대단히 역량 있는 스승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그 넓은 개념설정과 적극성이 부럽기도 하다.

대학 졸업 이후 수십 년 간 연락을 주고받으며 대소사를 챙겨주는 졸업생들도 여럿 있어 고맙지만 그들 역시 제자라고 부르기는 망설여진다. 정년퇴임을 하고나서 여유 있게 졸업생 하나하나를 떠올려본다. 최근 몇 년간의 졸업생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기억이 나는 얼굴들이어서 근황이 궁금해진다.

교육현장이 붕괴되고 온 나라 대학이 거대한 취업준비 현장으로 바뀌어 가는 우리 현실에서 스승이라는 명칭에 합당한 역할과 자기수양과 처신, 마음씀씀이는 한층 중요해졌다. AI가 강의요원으로 등장하고 모니터를 통하여 지식을 전수하는 사이버 강의가 더욱 확산될 전망이고 보면 스승이라는 호칭에 합당한 처신과 노력은 더욱 어려워 보인다.

일제 강점시 신파극으로 인기를 끌었고 여러 번 영화로도 제작된 '검사와 여선생'이라는 작품이 떠오른다. 어렵게 공부하여 반듯하고 정의로운 검사로 성장한 제자, 기구한 운명으로 그 제자의 법정에 서게 된 여선생. 설득력이 떨어지는 작위적인 신파 드라마라고는 하지만 이 작품에서 '선생과 학생'으로부터 '스승과 제자'로 이어지는 감동적인 사례를 찾아본다. 이제라도 더 나은 스승이 되기 위한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리라 다짐해본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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