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을석 충북교육정책연구소장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인사청문회 때부터 대학 입시의 공정성이 큰 화두로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수능중심 정시 확대론이 점점 힘을 얻었다.

조국 전 장관의 자녀들이 논문, 인턴 활동, 봉사활동, 대외 표창장 등 이른바 '부모 찬스'를 활용한 스펙을 이용 대학에 진학하였으며, 이를 가능케 한 것이 학생부종합전형(수시, 학종)이라는 주장이 배경이 되었다.

급기야는 대통령이 국회 연설에서 정시 확대를 선언하고, 잇따른 교육 관계 장관회의를 통해 그 밑그림이 나오기에 이르렀다. 학생부종합전형의 공정성 강화, 서울 지역 대학 중심으로 수능 위주 정시 전형 비중 확대, 2025년 자사고와 외고 등 특수목적고를 일반고로 일괄 전환한다는 것이 잠정 결론이다.

대학의 수도권 집중이 심하고, 선호하는 대학이 수도권 대학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폭의 정시확대가 이뤄질 전망이다. 결국 지속적인 학종 공격이 수능 중심의 정시 확대로 귀결된 것이다. 참으로 안타깝다.

공정성 담론이 이어지는 동안 내내 뇌리를 맴돈 그림이 하나 있다. '우리의 교육 체계(Our Education System)'라는 제목이 붙어있는 그림. 원숭이, 코끼리, 펭귄, 개, 금붕어, 물개 등을 한 줄로 세워놓고 네모난 책상 뒤에 앉은 시험관(사람)이 말한다.: "공정한 선발을 위해 모두 동일한 시험을 치러야 합니다.: 자, 뒤에 있는 나무를 오르세요."

그림에 첨부된 아인슈타인의 말: "모두가 천재이다. 그러나 만약 물고기를 나무를 오르는 능력으로 판단한다면, 물고기는 자신이 바보라고 믿으면서 평생을 살아갈 것이다."

같은 날 같은 문제를 풀어 학생을 선발하는 정시 전형을 비판하는 데 이 그림만큼 강력한 것이 있을까 싶다. 혹자는 우리는 동물이 아니니까 메시지가 틀렸다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람의 재능이 각기 다른 점을 생각해보면 그리 틀린 것도 아니다.

공정성을 시비 삼아 정시확대를 주장하고 실행하는 것은 몇 가지 점에서 문제가 크다. 먼저 수능 중심의 정시 자체가 공정하지 않다. 이미 많은 연구자가 수능과 같은 표준화된 시험일수록 학생 가정의 사회경제적 배경(더 강력한 '부모찬스'다)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고 밝혀 놓았다. 또, 정시 확대는 시험 중심의 학교 교육('교육'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을 강화한다. 교육과정의 정상 운영은 고사하고 교과 진도를 빨리 끝내고 수많은 문제 풀이를 강요할 것이다. 그리고 주요 교과를 중심으로 사교육이 더 팽창할 것이다. 요약, 정리하고 문제 풀이하는 데 특화된 사교육에는 참으로 호기다. 실제로 사교육업체의 주가가 폭등했다. 마지막으로, 우리 학생들이 더욱더 시험 성적에 목매달게 될 것이다. 성적이 낮은 아이들은 열패감에, 성적이 높은 아이들은 경쟁 스트레스에 내몰리게 될 것이다.

공정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인재상이다. 스스로 진로를 선택하고 목표를 향해 어떤 활동을 펼치고 어떤 공부를 했으며 얼마만큼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가 학생선발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자기 진로에 맞춰 필수에 더해 심화 과목을 선택하고, 자치, 동아리 등 비교과 활동을 조직하는 자기 주도적 학생을 기르고 싶은가. 아니면 수능 설계자조차도 고개를 흔드는 시험만 바라보며 무작정 외우고 문제 풀이에만 매진하는 학생을 뽑고 싶은가.

학종(수시) 전형이 완벽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인재육성의 관점에서는 수능 위주 정시보다 100배 낫다. 불공정하고 부족한 점이 있다면 보완해 나갈 일이다. 작은 잘못을 피하자고 더 큰 잘못을 저지르는 어리석음이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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