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구 선생
▲ 김구 선생

서양에서는 젊은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의 이름을 스스럼없이 부르곤 한다. 우리 정서로서는 부럽기도 하고 조금 이질적이기도 한 대목이다. 서양언어에도 존댓말과 높임 표현이 있다지만 우리말의 다양하고 섬세한 어법에 비할 수 있을까. '…해라'에서부터 '…하시옵소서'까지 갖가지 상황에 활용되는 다채로운 어미 쓰임새는 우리 언어의 장점으로 꼽힌다. 그런데 막상 연장자를 부르는 호칭에서는 다양성의 폭은 줄어든다. 집안에서의 촌수나 사회생활 직함을 부르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리 마땅치 않다. 흔한 '○○○씨'는 이제는 좀 무례해 보인다. 그래서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부쩍 많이 쓰이나 보다. 특히 TV 등에서 나이든 연예인들을 대우한다고 아무개 선생님으로 부르는 걸 보면 좀 불편하다. 당사자가 살아온 이력이나 행실이 그다지 깔끔하지 못한 경우,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주는 거북함, 거부감은 더 커진다.

외국 TV 토크 쇼 등에서 백발의 출연자에게 이름을 부르며 유쾌하게 담소하는 문화가 우리에겐 아직 생소하다. 최근 중소 IT기업을 중심으로 반말쓰기 운동이 확산된다고 한다. 신입사원이 사장에게 "응, 그랬어…"라고 하면 스스럼이 없어지고 창의력이 확장되면서 새로운 직장문화가 정립된다는 주장인데 이 소식의 인터넷 댓글 거의 전부 부정 일색이었다. 서양에서 나이든 사람 이름을 부르는 것과 상사에게 반말을 하는 것은 다른 개념이 아닐까.

그다지 공감을 얻지 못하는 '○○○선생님' 호칭보다는 '○○○선생'으로 불리는 사회의 사표, 세상의 스승을 생각해 본다. 백결선생, 퇴계선생, 율곡선생, 박연선생, 허준선생, 김구선생<사진>, 이상재선생, 안창호선생, 장준하선생 같은 분들께 붙이는 '○○선생' 호칭은 별 생각 없이 붙여주는 '선생님'보다 그 자체로 더없는 존경과 흠모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 분들은 공통적으로 고관대작을 지내면서 자신의 입신을 도모하지 않고도 걸출한 사상과 업적, 고결한 인품의 삶으로 후세의 추앙을 받고 있다. 더러는 이름 다음에 붙는 '선생' 두 글자가 합쳐져 그 자체로 고유명사가 됐다.

이즈음 '○○○선생'을 찾기 힘든 세상이 됐다. 어지러운 사회를 향한 사자후의 일갈, 고결한 언행으로 깨우침을 주는 '○○○선생'이 그립다. 나름 올곧아 보였던 처신에 외길 정진으로 아, 이분은 그래도 혼탁한 세상에 스승이 되겠거니 기대를 품는 사이 정치권에 입문하거나 이런저런 추문에 휘말려 사라지는 숱한 경우를 보아왔다. 그래서 굳이 세상의 사표가 되는 분께 붙이는 존경의 칭호는 아니더라도 평범한 시민, 성실하고 올곧게 살아온 사람끼리 서로를 '○○○선생'으로 부르며 각자 삶의 경륜과 일상의 아름다움과 소박한 지혜를 나눠 봤으면 한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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